서울 명동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명동 모습. 사진=연합뉴스
애플, 블루보틀커피, 룰루레몬. 수많은 해외 브랜드들의 한국 진출 전략을 컨설팅하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상권마다 아주 명확한 색깔을 가지고 있고 (해외에서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 국내 소비자들은 새로운 브랜드 매장을 접했을 때 상권에 색깔을 브랜드에 입혀 인지한다는 사실입니다.

'럭셔리'(luxury) 색깔이 뚜렷한 청담동에 있는 브랜드의 경우 소비자들은 기존 브랜드의 이미지에 '프리미엄'이라는 색을 입혀 인지합니다.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이나, 골프용품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가 청담동에 매장을 내면서 꼭 갖고자 했던 부분은 바로 프리미엄 이미지입니다.

홍대 상권은 '영&트렌디'(Young&Trendy)라는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트리트 패션과 스니커즈 브랜드들에는 성수동이 뜨기 전까지 유일한 옵션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카카오는 이모티콘 유행을 활용해 '카카오프렌즈'라는 오프라인 매장을 낼 때 가장 먼저 홍대를 고려했고 이어 '라인프렌즈'도 홍대에 입성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오프라인 매장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온라인 패션플랫폼 최강자 무신사에서 '무신사 스탠더드' 1호점 매장으로 선택한 곳도 홍대 상권입니다.

가로수길 상권은 '합리적인 럭셔리'(Affordable luxury), '매스티지'(Masstige)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준 명품'의 색깔입니다. 명품처럼 비싼 제품들을 판매하지는 않으나 하이앤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색깔입니다. 사실 가로수길이 가진 이런 색깔은 한남동이 대안으로 떠오르기 전에는 한국에서 유일한 색깔이었습니다. 애플스토어가 국내 첫 번째 매장을 가로수길로 정한 이유입니다.

명동은 '매스'(Mass)는 색깔을 지닌 말 그대로 모든 소비자를 다 품을 수 있는 상권입니다. 지리적 여건 때문에 직장인과 학생, 교외 지역의 소비자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섞여 있는 상권으로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상권입니다. 상권이 침체했다가도 금세 회복하는 능력을 지녀 코로나19로 관광객이 끊겨 많은 매장들이 공실로 비어 있는 상황에서도 나이키, 아디다스, 애플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은 미래를 위해 국내 최대 매장을 오픈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울에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상권들의 강한 색깔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MZ세대를 겨냥해서 새로운 색깔을 갖고 싶은 브랜드들에는 늘 매장 위치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이런 브랜드들의 고민과 MZ 소비자들의 니즈가 만나 새롭게 탄생한 상권이 성수동입니다. '재생'이라는 테마로 공장, 창고 등을 리뉴얼해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만 하다라는 의미의 신조어)합니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성수 상권에는 '디올'과 같이 MZ세대들이 소비 주체로 떠오르기 시작한 여러 명품 업체들의 팝업스토어와 '29cm', '무신사' 같은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의 오프라인 매장이 들어섭니다.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는 블루보틀 커피가 1호점을 성수동에 낸 이유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렇다고 어떤 상권에 들어갔다고 해서 상권이 가진 색깔을 브랜드에 입힐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실패 사례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브랜드가 가진 색깔, 추구하는 가치와 상권의 색깔이 맞아떨어졌을 때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인지해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성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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