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만 간신히 챙겨"…요양시설 앞 민가도 전소
[르포] 대전 산직동 산불 주민들 "불이 걸어 다니는 것처럼 내려와"
"불이 마치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처럼 빠르게 내려와서 미처 손을 쓸 수가 없겠더라고요.

"
대전 서구 산직동에서 발생한 산불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A(68) 씨는 3일 뼈대만 남은 집을 보며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A씨가 살았던 3층 주택은 철골 구조물만 남긴 채 모든 세간 살림이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인근 단층 주택 2채는 슬레이트 패널 지붕이 완전히 내려앉은 가운데, 녹아내린 창문 살과 유리 조각, 선풍기 등 가전 도구 잔해들이 널브러져 형체를 알아보기조차 어려웠다.

주택 옆 산기슭에는 앙상한 나뭇가지 밑으로 잿더미가 수북이 쌓여있어 불이 난 지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 매캐한 냄새를 풍겼다.

A씨는 "산에서 불기둥이 치솟더니 오전 11시께부터 연기가 집 쪽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며 "약이고 뭐고 챙길 시간도 없이 휴대전화만 가지고 대피했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번 화재로 전소된 다른 민가의 소유자 B(83) 씨도 "병원에 진료를 보러 갔다가 이웃 연락을 받았다"며 "모두 다 타버려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르포] 대전 산직동 산불 주민들 "불이 걸어 다니는 것처럼 내려와"
인근 주민 C(72) 씨는 "불이 마치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처럼 빠르게 민가로 내려왔다"며 "풍속도 강했지만, 풍향도 시시각각 변해 온 사방이 불에 타는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A씨는 "우리 집이 소방 당국이 전력 진압작업을 펼친 요양시설 바로 앞에 있었는데, 물만 뿌려줬어도 이렇게 다 타버리진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소방 당국은 다중이용시설인 노인요양시설부터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전소방본부 관계자는 "신고접수 즉시 산림청과 119안전센터 소속 소방차 2대를 급파해 진압에 나섰지만 바람이 너무 강했다"며 "노인 입소자 등 52명이 대피하지 못한 상황이라 이들을 우선으로 대피시키는 데 주력했다"고 밝혔다.

전날 낮 12시 19분께 대전 서구 산직동 일대에서 산불이 나 민가 2채와 암자 1채가 전소됐고, 인근 노인 요양원, 지적·발달장애인 시설 등 입소자 900명이 긴급대피했다.

소방·산림 당국은 화재 이틀째인 3일 오전부터 헬기 16대, 인력 1천897명을 투입해 주불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강한 바람 탓에 진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