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에서 ‘현금’을 쥔 기업에 주목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연쇄 부실 우려가 커지는 데다 국내 기업들의 실적 둔화까지 겹치며 증시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탄탄하고 비축한 현금이 많은 기업이 위기에 적극 대응하고 투자에도 나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금 쥔 1등은 HMM

금융리스크로 증시 불안정…"현금 쥔 기업을 주목하라"
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국내 상장사 시가총액 상위 200개 기업 가운데 잉여현금흐름(FCF)이 가장 우수한 기업은 HMM이었다. HMM은 지난해 4분기 기준 누적 10조71억원의 잉여현금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기아(6조5695억원) 한화(4조4861억원) GS(2조4754억원) 대한항공(2조892억원) 두산에너빌리티(1조9576억원) 순으로 잉여현금이 많았다. FCF가 1조원 이상인 기업은 총 9곳이었다.

시가총액(지난달 30일 기준) 대비 FCF로 보면 한화의 현금 보유 능력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화는 시총 대비 2.3배의 잉여현금을 쌓아뒀다. 이어 HMM(1.02배) GS(0.66배) 롯데쇼핑(0.38배) 두산(0.38배) 순이었다.

시총 대비 잉여현금이 가장 적은 기업은 한국전력이다. 지난해 4분기 누적 FCF는 -35조4089억원이었다. 지난해 누적 영업손실이 32조6034억원을 기록하면서 보유 현금 역시 크게 부족해졌다. 한국가스공사도 지난해 미수금이 9조원에 육박하면서 FCF가 -16조2084억원으로 크게 나빠졌다. 지난달 30일 기준 시가총액(2조5432억원)보다 6.3배 넘는 현금이 부족했다.

FCF는 기업이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 가운데 영업비용, 설비투자액 등을 제외하고 남은 현금을 말한다. FCF가 높다는 것은 기업이 재무적으로 안정적임을 의미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의 유동성 부족 현상이 자금 공급 부족으로 이어진다면 자체 현금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며 “투자에 앞서 기업들의 현금 보유 수준을 꼼꼼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업이익률도 함께 따져야

전문가들은 보유 현금뿐만 아니라 영업이익률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감안하면 IT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의 업종이 비교적 위기에 잘 견딜 것으로 전망됐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국내 IT하드웨어업종 기업의 평균 잉여현금 비율(총부채 대비 잉여현금)은 지난해 기준 14.3% 수준으로 분석됐다. 국내 제조업 평균 잉여현금 비율이 5.1% 수준임을 고려하면 IT하드웨어업종이 평균적으로 더 많은 현금을 쥐고 있다는 얘기다. 소프트웨어(13.5%) 철강(7.8%) 헬스케어(17.6%) 운송(13.0%) 등도 부채 대비 현금 보유 비율이 높았다.

올해 영업이익률이 전년 대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은 소프트웨어, 헬스케어, IT하드웨어 등으로 평가됐다. 소프트웨어업종의 올해 예상 평균 영업이익률은 전년 대비 2.1%포인트 높은 10.2%, IT하드웨어 업종은 전년 대비 1.4%포인트 높은 7.6% 수준으로 전망됐다.

국내 대표 산업인 반도체업종의 잉여현금 비율은 13.1%로 우수한 편이나 올해 예상 영업이익률은 2.4% 수준으로 제조업 평균(5.4%)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됐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잉여현금 비율이 높아지면서 영업이익률이 유지 또는 상승할 수 있는 업종에서 주도주가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