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스톤이 부동산 투자 회사(리츠·REITs)에 환매 제한 조치를 걸었다. 작년 11월부터 5개월 연속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중앙은행들의 긴축(금리 인상) 기조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 데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촉발된 은행 위기가 부동산 금융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면서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3월 기준 블랙스톤의 리츠 상품 Breit에 조기 환매를 요구한 규모가 45억달러(약6조원)에 달했다. 지난 2월 환매 요구액 39억달러 대비 15% 증가했다. 블랙스톤은 "펀드에 설정된 환매 한도를 이용해 인출 요구액 중 6억6600만달러만 고객들에게 돌려줬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조기 환매 요청 규모가 월 기준 순자산의 2%, 분기 기준 순자산의 5%를 넘으면 이를 제한해오고 있다.

블랙스톤의 간판 상품인 해당 부동산 펀드는 부유층 개인 투자자들에게 부동산 투자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17년 출시됐다. 설립 5년만에 운영자산 규모가 700억달러를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인해 부동산 부문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 부문에 대한 대출 부실 우려가 높아지면서다. 지난달 불거진 SVB 사태 이후로는 상업용 부동산 투자 익스포저가 많은 중소은행들의 연쇄 부실화 전망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Breit에서의 자금 이탈 움직임은 지난 1년 사이에만 전체 자산 대비 50% 가까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시아 지역 투자자들의 탈출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동성 위기감이 고조되자 블랙스톤은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제한 조치를 발동해 환매를 요구한 투자자들에게 50억달러를 내주는 데 그쳤다.

FT는 "지난달 대규모 조기 환매 요구는 블랙스톤 경영진이 '금융 변혁기일수록 리츠로 얻을 수 있는 투자기회가 많다'며 적극 홍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고 평가했다. 블랙스톤의 조나단 그레이 회장 등은 최근 200명 이상의 최고부유층 투자자를 뉴욕 맨해튼의 프라이빗 클럽에 초청했다. 해당 자리에서 그레이 회장 등은 "금융 위기가 확산되면 신규 부동산 건설을 위한 은행 자금 조달이 제한돼 공급이 위축되고 부동산 임대료가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라며 Breit의 수익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유럽에서는 부동산발 유동성 위기를 조기 차단하기 위한 당국의 선제적 대응 방안이 제시됐다. 유럽의 상업용 부동산 투자 전문 리츠는 지난 10년 간 3배 이상 급증해 1조유로에 달한다. 하지만 MSCI 유럽 부동산지수는 올해 들어서만 24% 급락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긴축 기조 등으로 투자자들이 리츠에서 돈을 인출할 가능성이 확 늘고 있는 반면 펀드 자산 자체의 유동성은 제한적"이라며 블랙스톤의 사례를 언급했다. 이어 "이런 개방형 부동산 펀드의 구조적 취약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시급히 개발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