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수㎞·깊이 150㎝ 참호에 '용의 이빨' 장벽…"탱크도 빠질 것"
우크라, '푸틴 성지' 탈환해야 무역로 확보…"핵전쟁 위험" 우려도
러, 크림반도에 여러겹 참호 팠다…"우크라 대반격 두렵다는 뜻"
우크라이나군이 봄 대반격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러시아가 최근 서둘러 점령지인 크림반도의 접경지역에 참호를 깊게 파고 방어선을 구축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는 상업위성 업체 막사(Maxar)의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최근 수 주일 만에 크림반도의 북부 해안지역 등 우크라이나와 연접한 지역에 수겹의 참호가 길게 구축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수 킬로미터(㎞)씩 이어지는 참호는 접경 소도시 메드베데우카 주변을 비롯한 십여곳에 형성됐다.

참호는 150㎝ 깊이로 만들어졌고, 일부 참호는 전차나 장갑차 등도 빠질 정도로 더 넓고 깊게 파였다.

일부 참호와 장애물, 관련 시설은 운하나 하천을 따라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땅이던 크림반도를 점령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기왕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는 김에 이 크림반도도 되찾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조만간 서방의 전차 등으로 무장한 뒤 대반격에 나서게 되면 동부 돈바스뿐만 아니라 크림반도 쪽으로도 진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호기롭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가 되레 밀리며 망신당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위상을 공고히 해준 크림반도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성지'와도 같다.

이 때문에 러시아군은 최근 수주일 동안 신속히 우크라이나군 진입 예상지역에 집중적으로 참호를 깔고, 전차 등의 통행을 막기 위해 '용의 이빨'(Dragon's Teeth)로 불리는 콘크리트 장애물 등을 배치한 것이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이언 마트비에프는 "러시아군은 크림반도에서 방어전을 치러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동부 돈바스에도 참호를 팠지만, 크림반도의 참호는 다른 지역의 것보다 훨씬 눈에 띈다고 WP는 평가했다.

러, 크림반도에 여러겹 참호 팠다…"우크라 대반격 두렵다는 뜻"
마트비에프는 "푸틴에겐 크림반도는 '신성한 암소'(sacred cow)와 같다"며 "크림에 무슨 일이 생기면 러시아군이 바로 달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크림반도에 참호 공사를 서두르면서 소련 시절에나 쓰이던 장비도 투입됐다고 WP는 전했다.

소련 시절 개발된 참호 건설장비인 'BTM-3'는 땅이 얼어붙은 상태에서도 시간당 800m씩 참호를 판 것으로 파악됐다.

미군은 1980년 내부 보고서에서 이 장비를 분석하면서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는 이와 비슷한 장비가 없다며 경탄한 바 있다.

러시아군은 참호 건설에 민간 용역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구인 사이트에선 크림반도 참호 건설에 참여할 인력 모집 공고가 올라오기도 했는데, 하루 일당이 꽤 많은 90달러(11만8천원)에 달했다고 WP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립 전략연구소의 미콜라 비에리스코우 연구원은 "크림반도를 이 정도로 요새화한 것은 러시아의 두려움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까지 드론이나 특수부대를 동원해 타격하며 긴장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서방 관리들은 크림반도에서의 직접적인 충돌은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크림반도가 공격받으면 핵무기를 쓸 것이라고 여러 차례 위협한 바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로서도 단순히 옛땅을 회복한다는 의미를 넘어 경제적으로도 크림반도가 필요하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거점 삼아 우크라이나의 해상 무역로를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 호지스 전 유럽주둔 미군 사령관은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아조우해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라며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탈환하지 않는다면 경제는 빨리 회복되지 못하고 취약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러, 크림반도에 여러겹 참호 팠다…"우크라 대반격 두렵다는 뜻"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