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4일 오전 별세했다. /사진=연합뉴스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4일 오전 별세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 회장이 고인이 된 선배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의 별세 소식에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회장은 4일 한경닷컴과의 전화 통화에서 "너무 슬프다. (가요계) 별이 떨어지는 소리에 눈물이 났다. 며칠 전에도 '자연아 보고 싶다'라면서 전화가 왔었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고인은 생전 지병 없이 건강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건강한 분이었다. 작년에 다리를 살짝 삔 게 전부다"면서 "2월 24일 대한가수협회에서 주는 공로상을 받을 당시에도 '100살까지 노래하자'고 말씀하셨다. 올봄에 공연이 여러 개라서 같이 다니자고 얘기했었다"고 전했다.

특히 고인은 생전 가수 활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컸다. 2007년 데뷔 50주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며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오게 되면 할 것이다.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모습"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노래 열정이 대단하시다. 우린 열정이 있어도 몸과 마음과 목소리가 일치하지 않는데, 현미 선배님은 일치하는 분이다. 굉장히 씩씩한 선배님이다. 늘 긍정적이라서 '이분처럼 살면 건강하게 살 수 있겠구나' 생각할 정도였다"면서 "큰 별이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가슴 아프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현미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73)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향년 85세.

1938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현미는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으로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전공이 고전무용이었던 그는 당시 칼춤 무용수로 무대에 올랐다. 그러다 일정에 불참한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가 됐다.

국민가수 반열에 오른 건 1962년 '밤안개'를 발표하면서였다. '밤안개'가 히트하면서 현미는 이미자, 패티김과 함께 1960~70년대를 풍미했다. 허스키한 재즈풍 보컬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내 사랑아', '보고 싶은 얼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의 곡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65년에는 김기덕 감독 연출,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 때는 말없이'의 동명 주제곡을 부르기도 했다.

1981년에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파티에 초청받아 한국 대표 가수로 노래를 불렀고 기립 박수를 받았다.

고인의 빈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현재 두 아들이 미국에 머물고 있는 관계로 빈소는 이들이 귀국한 뒤 차려질 예정이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