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멀어지면 인간은 불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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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땅이 베푸는 색과 냄새와 소리들의 향연
이 강렬한 시간 체험이 행복을 결정한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땅이 베푸는 색과 냄새와 소리들의 향연
이 강렬한 시간 체험이 행복을 결정한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당신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땅 밟을 일이 거의 없는 고층아파트에 살고,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하루 시간을 다 보내는가? 인간은 땅에서 떨어질수록 행복과 멀어진다. 땅과 분리된 삶에 매여 산다면 당신 삶의 의미는 서서히 바닥을 드러낸다. 본디 인간은 땅(자연)에 속한 존재다.
한 시인은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김경미, ‘오늘의 결심’)는 결심에 이르는데, 이 시구는 땅을 배제한 삶의 공허함을 꿰뚫어본 성찰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행복이 땅과의 충만한 교감을 하는 신체 감각을 유지하는 것에 의존한다는 사유와 땅의 노동이나 땅의 접촉에서 얻는 신체적 실감이 없는 삶은 불행하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철학자는 “땅은 자아를 저 자신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해방시킨다”(한병철, <땅의 예찬>, 김영사, 2018)고 말한다. 꽃과 나무들, 연못에 파문을 만들며 일렁이는 바람, 이마에 비치는 한 줄기 빛, 숲에서 들려오는 영롱한 새소리는 땅이 베푸는 색과 냄새와 소리들의 향연으로 풍성하다.
이 생동감 속에서 사는 것이 진짜 삶이다. 땅과의 연관에서 오는 강렬한 시간 체험이 우리의 행복을 결정한다. 눈 뜨자마자 휴대폰을 보고 SNS에 게시된 글을 주르륵 읽으며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소셜미디어에 관심을 착취당하는 행위다. 신체 감각을 잃고 디지털의 세계에서 방향도 모른 채 떠도는 우리를 구원하는 구명 뗏목은 바로 땅이다.
이즈막 고용노동부가 입법 예고한 근로시간 개편안은 노동 시간의 경계를 유연하게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개편안은 주당 최대 52시간 노동이란 근로 조건의 틀을 바꾸는 걸 전제로 한다. 일할 때 몰아서 하고 쉴 때는 푹 쉬자는 것이 개편안의 고갱이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성수기나 납품량이 급증할 때 노사 합의로 시행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장시간 노동이 우리 신체와 정신에 일으킬 부작용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좋은 노동이란 항상 땅과 땅의 충만감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에 응답한다. 땅과의 접촉에서 분리되는 노동은 우리를 과부하로 내몰 수 있다. 노동은 삶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이고, 자아실현이며, 우리 현존의 기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은 더 많은 돈과 여유, 경제적 안정을 이유로 우리 하나하나를 식민지로 삼는 매개다. 내 주변의 워커홀릭 대부분은 행복하지 못한데 이것은 업무 성과와 생산성을 숭배하는 사회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워커홀릭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한 장소에 고요하게 머물며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신체 감각을 자연에 더 밀착시킬 기회를 잡지 못하는 불가능에 빠져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미술사학을 가르치며 예술가로 활동하는 제니 오델은 반자본주의적인 도피와 게으름, 뜬구름 잡기에 몰두하라는 사상을 퍼뜨리는 선동가로 유명하다. “다른 생명체가 나를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세계에서 나 역시 보고 듣고 냄새 맡는다. 이 사실을 기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 그저 귀 기울일 시간, 가장 깊은 감각으로 현재 우리의 모습을 기억할 시간 말이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필로우, 2021)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동물은 땅에서 먹이를 구한다. 땅은 식물과 동물이 생을 구하는 바탕이자 미래일 테다. 첫서리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뒤 들판 초목들은 다음 세대에 제 유전자를 전달할 씨앗과 뿌리를 남긴 채 시들어 땅으로 돌아간다. 동물들은 자연수명을 다하면 숨을 거두고 땅에 묻혀 유기체로 분해돼 땅으로 녹아든다.
우리는 온갖 생명을 품은 땅의 숭고하고 장엄한 교향곡 안에서 먹고 사랑하며 행복을 구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저버린 채로 긴 시간의 노동에 진절머리를 일으키며 근육에 피로물질이 쌓이는 삶에 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지치거나 무력감이 들 때는 땅으로 돌아가라! 땅과 교섭하는 특별한 감각 속에서 기쁨을 되찾는다면 우리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
한 시인은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김경미, ‘오늘의 결심’)는 결심에 이르는데, 이 시구는 땅을 배제한 삶의 공허함을 꿰뚫어본 성찰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행복이 땅과의 충만한 교감을 하는 신체 감각을 유지하는 것에 의존한다는 사유와 땅의 노동이나 땅의 접촉에서 얻는 신체적 실감이 없는 삶은 불행하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땅은 생명을 기르는 大地母神
땅은 존재를 구성하는 성분을 품고, 생육에 필요한 영양분을 베풀며 우리를 기른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지구 생명체들은 땅에서 나오고 죽으면 다시 땅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땅이 기른 곡식과 채소를 먹고, 땅의 기운을 느끼며 산다. 땅은 생명의 기반이고, 삶의 시간은 곧 땅의 시간이다. 땅은 생명을 기르는 대지모신(大地母神)이다. 땅의 냄새를 맡고, 땅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땅의 아름다움과의 교섭을 깊은 감각의 층위에서 공감하는 것은 우리 삶의 중요한 토대다. 땅과의 연결이 없다면 죽은 삶이다.철학자는 “땅은 자아를 저 자신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해방시킨다”(한병철, <땅의 예찬>, 김영사, 2018)고 말한다. 꽃과 나무들, 연못에 파문을 만들며 일렁이는 바람, 이마에 비치는 한 줄기 빛, 숲에서 들려오는 영롱한 새소리는 땅이 베푸는 색과 냄새와 소리들의 향연으로 풍성하다.
이 생동감 속에서 사는 것이 진짜 삶이다. 땅과의 연관에서 오는 강렬한 시간 체험이 우리의 행복을 결정한다. 눈 뜨자마자 휴대폰을 보고 SNS에 게시된 글을 주르륵 읽으며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소셜미디어에 관심을 착취당하는 행위다. 신체 감각을 잃고 디지털의 세계에서 방향도 모른 채 떠도는 우리를 구원하는 구명 뗏목은 바로 땅이다.
신체 감각을 땅에 연결해야
땅을 향한 갈망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디지털 권력과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로 흩어진 관심의 주권을 되찾고, 신체 감각을 땅에 연결하고 확장해야 한다. 디지털 기기의 전원을 끄고 자연의 정적을 받아들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의 순간’을 느린 리듬으로 경험하는 것은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는 뜻이다.이즈막 고용노동부가 입법 예고한 근로시간 개편안은 노동 시간의 경계를 유연하게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개편안은 주당 최대 52시간 노동이란 근로 조건의 틀을 바꾸는 걸 전제로 한다. 일할 때 몰아서 하고 쉴 때는 푹 쉬자는 것이 개편안의 고갱이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성수기나 납품량이 급증할 때 노사 합의로 시행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장시간 노동이 우리 신체와 정신에 일으킬 부작용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좋은 노동이란 항상 땅과 땅의 충만감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에 응답한다. 땅과의 접촉에서 분리되는 노동은 우리를 과부하로 내몰 수 있다. 노동은 삶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이고, 자아실현이며, 우리 현존의 기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은 더 많은 돈과 여유, 경제적 안정을 이유로 우리 하나하나를 식민지로 삼는 매개다. 내 주변의 워커홀릭 대부분은 행복하지 못한데 이것은 업무 성과와 생산성을 숭배하는 사회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워커홀릭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한 장소에 고요하게 머물며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신체 감각을 자연에 더 밀착시킬 기회를 잡지 못하는 불가능에 빠져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미술사학을 가르치며 예술가로 활동하는 제니 오델은 반자본주의적인 도피와 게으름, 뜬구름 잡기에 몰두하라는 사상을 퍼뜨리는 선동가로 유명하다. “다른 생명체가 나를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세계에서 나 역시 보고 듣고 냄새 맡는다. 이 사실을 기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 그저 귀 기울일 시간, 가장 깊은 감각으로 현재 우리의 모습을 기억할 시간 말이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필로우, 2021)
가끔은 '디지털 디톡스 휴가'를
오델은 자신만의 시간을 움켜쥐라고 말한다. 그는 ‘디지털 디톡스 휴가’를 권하고, 자주 산책하며 새와 나무와 바위를 눈여겨보고, 장미 정원 가꾸기를 하라고 권한다. 이는 ‘계량화할 수 없는 삶의 빛나는 시간’을 향유하라는 권유인 동시에 좋은 삶을 위해서는 노동에만 속박되어선 안 된다는 경고일 테다.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동물은 땅에서 먹이를 구한다. 땅은 식물과 동물이 생을 구하는 바탕이자 미래일 테다. 첫서리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뒤 들판 초목들은 다음 세대에 제 유전자를 전달할 씨앗과 뿌리를 남긴 채 시들어 땅으로 돌아간다. 동물들은 자연수명을 다하면 숨을 거두고 땅에 묻혀 유기체로 분해돼 땅으로 녹아든다.
우리는 온갖 생명을 품은 땅의 숭고하고 장엄한 교향곡 안에서 먹고 사랑하며 행복을 구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저버린 채로 긴 시간의 노동에 진절머리를 일으키며 근육에 피로물질이 쌓이는 삶에 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지치거나 무력감이 들 때는 땅으로 돌아가라! 땅과 교섭하는 특별한 감각 속에서 기쁨을 되찾는다면 우리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