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취임 이후 처음이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2016년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7년 만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 전량을 반드시 사주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지금도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재량적으로 매입하는 시장격리제도가 있는데, 이를 의무화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포퓰리즘적 법안인데,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직접 회부해 단독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법안 처리 과정에서 위안부 재단 관련 비리로 출당된 무소속 윤미향 의원을 활용하는 ‘꼼수’도 부렸다.

윤 대통령이 쌀 농가의 반발과 야당의 선동 등에도 불구하고 거부권을 행사한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 민주당은 쌀값 안정화와 식량안보 논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 법이 가져올 효과는 정반대다. 앞으로 판로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쌀을 생산해도 되겠다는 잘못된 신호를 줌으로써, 과잉 생산과 가격 하락을 지속적으로 유발하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 자명하다. 농업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쌀 의무 매입 시 쌀값은 2030년 80㎏당 17만2000원으로, 지난 5년 평균가(19만3000원)보다 오히려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쌀 농가를 제외한 농민들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많다. 더욱이 식량안보 논리에서라면 남아도는 쌀이 아니라 자급률이 떨어지는 다른 작물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이 논리적이다. 농민단체 40여 곳이 개정안에 반대하는 데는 이런 기류가 작용하고 있다. 해외 사례도 모두 부정적이다. 1960년대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실시한 곡물 가격 보장제나 2011년 태국의 쌀가격 개입 정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쌀 의무 매입 시 예상되는 1조원의 예산은 연간 농업 연구개발(R&D) 투입액과 맞먹는 규모이며, 3000평짜리 스마트팜 300개를 만들 수 있는 큰돈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지난 30년간 쌀 소비량이 절반으로 줄어 이제는 매년 10만t 이상이 사료나 주정용으로 처분되는 마당에 이렇게 막대한 혈세가 낭비되는 것을 묵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도 반대했던 일을 이제 와서 농민 보호를 내세워 추진하고 있다.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한덕수 국무총리를 향해선 ‘양아치’라는 표현도 썼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법안 내용을 고쳐 대체입법을 하겠다고 한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도해 ‘반농민’ 프레임을 씌우려는 속셈인데, 이쯤 되면 누가 ‘양아치’인지 따져볼 일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는 ‘노란봉투법’과 공영방송 사장 임명 방식을 야당에 유리하게 바꾼 방송법 개정안 추진에 이어 대통령의 인사·사면·외교 권한까지 제한하는 법안을 충성 경쟁하듯 쏟아내고 있다. 건전한 상식이 있는 시민이라면 그 의도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