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은 당국의 느슨한 규제에 의해 키워졌다. 은행 위기에 앞서 미 중앙은행(Fed)의 검증도 없었다. 월가가 위험을 알아챌 때까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CEO)가 4일(현지시간) 주주 연례 서한을 통해 지난달 미국에서 불거진 SVB 파산 사태를 이렇게 총평했다. 중소은행을 중심으로 무보험 예금 규모가 확대되는 동안 당국이 선행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이날 다이먼 CEO는 JP모간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을 통해 인공지능(AI)과 챗GPT에 관한 회사의 전략을 밝히고 은행 위기와 자본 규제에 대해 논평했다. 다이먼 CEO는 2005년부터 JP모간의 CEO로 재임 중이다. 그가 매년 내놓는 주주 연례 서한은 월가에서 '미래 예언서'로 통한다.

다이먼 CEO는 규제 당국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사실상 당국이 은행에 국채 투자를 하도록 장려했다"며 "지금까지 미 중앙은행(Fed) 등 규제 당국은 풍부한 유동성을 보증 삼아 은행에 낮은 자본 확충 요건을 내세웠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 나쁜 것은 금리가 급격히 치솟는 동안 Fed는 은행에 스트레스 테스트(재무 건전성 평가)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라고 덧붙였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개입하며 SVB 사태가 진화됐지만, 다이먼 CEO는 여전히 위기의 불씨가 남아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장 침체 가능성이 더 커졌다"며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시장을 휘감은 불안감이 다른 은행을 압박해 신용 경색을 일으킬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이먼 CEO는 은행이 겪는 혼란을 완화하기 위해선 명확한 규칙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했다. 불규칙한 스트레스 테스트 일정과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은행을 더 보수적으로 바꿔놓는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은행이 대출 조건을 더 강화해 침체의 골이 깊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그림자 금융에 대해서 다이먼 CEO는 경계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림자 금융은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비(非)은행 금융회사나 금융상품을 뜻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대표적인 그림자 금융상품이다.

모기지, 신용카드 등의 분야에서 그림자 금융업체와 은행의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다이먼 CEO는 "비은행 금융기관이 과연 고객에게 제때 신용을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대부분의 비은행 금융기관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