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으로 이전한 주요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특별전형’을 특정 지방대가 사실상 독식하다시피 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행법상 지방 이전 공공기관은 본사가 있는 지역 출신 인재를 30% 이상 뽑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결국 특정 지방대 ‘싹쓸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지방 균형 발전 목적으로 도입한 지역인재 채용 제도가 오히려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울어진 '공기업 지역특채'…한전·LH, 일부 대학서 독식

○공기업 몰려 있는 혁신도시서 두드러져

5일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이 7개 공공기관에서 받은 ‘최근 3년간(2020~2022년) 대졸 지역인재 채용’ 자료에 따르면 전북 전주로 이전한 국민연금공단은 이 기간 뽑은 지역인재 142명 중 112명이 전북대 출신이었다. 전남 나주로 옮긴 한국전력은 333명 중 203명이 전남대 출신이었고, 경남 진주로 간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81명 중 53명이 경상대 졸업자였다.

공공기관이 몰려 있는 혁신도시에선 이런 쏠림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울산 우정혁신도시에 있는 4년제 대학은 울산대와 울산과학기술원 두 곳뿐이다. 그렇다 보니 울산에 있는 공공기관에서 지역인재는 울산대 출신이 대부분이다. 최근 3년간 안전보건공단은 지역인재 36명 중 30명, 근로복지공단은 51명 중 32명, 한국동서발전은 26명 중 18명, 한국에너지공단은 26명 중 19명이 울산대 출신이었다.

이에 따라 전체 대졸 신입사원을 기준으로 봐도 특정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기도 한다. 한전은 지난해 대졸 신입사원(정규직)이 232명이었는데 이 중 71명이 지역인재 전형으로 뽑혔고, 43명이 전남대 출신이었다. 전체 대졸 신입사원의 18.5%, 즉 5명 중 1명이 전남대 졸업생이었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해 정규직 신입사원 329명 중 35명이 전북대 졸업자였다.

○“이게 공정이냐” 비판 커져

이런 일이 생기는 건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방 이전 공공기관은 신규 채용 인력의 30% 이상을 본사가 있는 지역(광역시·도)의 대학에서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법은 지역 균형 발전 명목으로 2018년 도입됐다. 도입 초기엔 신입사원 중 18%였던 지역인재 의무 채용 비율이 계속 늘어 현재 30%로 높아졌다.

문제는 이런 규정 때문에 지방으로 옮긴 공공기관에 특정 지방대 출신이 너무 많아지고 다른 대학 출신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점이다. 청년층 사이에선 취업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에서 특정 지방대가 과도하게 혜택을 누리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인력 관리에도 부정적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지연에 학연까지 얽힌 사내 조직이 늘면서 조직 문화가 나빠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해온 전문가들도 기획재정부에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인재 분류 기준도 문제로 꼽힌다. 혁신도시 특별법은 ‘해당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다른 지역 대학을 졸업하면 채용 의무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한다. 지방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지역인재가 아니지만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니다가 지방대를 졸업하면 지역인재로 분류되는 것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지난해 1월 지역인재 채용 관련 시행령을 바꿨다. 전국 10개 혁신도시를 6개 생활권역(전북·광주·전남, 강원, 제주, 대구·경북, 대전·충청, 부산·울산·경남)으로 묶어 지방자치단체끼리 협의하면 지역인재 채용 때 대상 지역을 ‘광역화’하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이에 따라 울산과 경남은 지난해부터 광역화가 가능해졌다. 울산에 있는 공기업이 지역인재를 뽑을 때 경남에 있는 대학에서도 뽑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는 이해관계가 달라 협조가 잘 안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대수 의원은 "조직 내 특정 지역대학의 쏠림은 공공기관의 경쟁력과 지역균형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며 "지역인재채용의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전반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