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우주 속의 별
지구 속의 파리
파리의 몽수리 공원에서
겨울 햇빛 속 어느 아침
네가 내게 입 맞춘
내가 네게 입 맞춘
그 영원의 한순간을
다 말하려면
모자라리라
수백만 년 또 수백만 년도.

* 자크 프레베르(1900~1977) : 프랑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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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몽수리 공원의 입맞춤
잊지 못할 그 '영원의 한순간'...

오늘 [아침 시편]도 지난번처럼 파리에서 띄웁니다. 이 편지를 받아 볼 즈음엔 제가 이미 귀국했을 테니 이른바 ‘늦게 온 편지’가 되겠군요.

이 시의 배경은 파리 14구에 있는 몽수리 공원입니다. 지난 3월 마지막 주말에 이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목련꽃이 환하게 인사를 건네더군요. 울창한 숲을 이룬 나무들의 표정도 밝았습니다. 한 세기 전 앙리 루소가 여기에서 ‘몽수리 공원 산책’이라는 그림을 그렸지요.

이 공원에는 젊은 연인들이 많이 옵니다. 풍경이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길 건너에 ‘시테’라고 불리는 파리 국제 학생기숙사 캠퍼스(Cite Internationale Universitaire)가 있어서 더욱 그렇죠. 이 시의 주인공 역시 파릇한 청춘일 겁니다.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어느 날 ‘네가 내게 입 맞춘/ 내가 네게 입 맞춘/ 그 영원의 한순간’을 말로 다 표현하려면 ‘수백만 년 또 수백만 년’으로도 모자라겠죠?

생의 한순간을 어쩌면 이리 아름답게 포착하고 그려낼 수 있을까요. 시간과 공간을 무한하게 늘렸다 줄이는 이 전지전능한 시인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비디오의 정지화면처럼 그 ‘우주 속의 찰나’를 강렬한 이미지로 채색까지 할 수 있으니 놀랍기만 합니다.

자크 프레베르는 현대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여론조사 결과 1위, 교과서에도 제일 많이 수록돼 있죠. 그의 시는 쉽고 이미지 또한 선명합니다. 쉬운 언어와 영화 같은 장면 묘사는 그의 특장점이죠.

이건 그의 독특한 성장 과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 졸업 후 학업을 중단해야 했어요. 그러나 연극평론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틈틈이 연극과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군 제대 후 광고 회사에 근무하면서 단막극과 영화 시나리오, 노랫말을 주로 썼죠.

시를 쓸 땐 복잡한 기교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익숙한 영상을 시의 이미지에 녹여냈죠. 이 덕분인지 46세에 낸 첫 시집 『말』이 순식간에 5000부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그의 시는 샹송으로도 인기를 끌었지요. 국민가수 이브 몽탕과 에디트 피아프의 목소리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그의 시어는 쉽지만 그 속엔 ‘사랑’과 ‘인생’의 의미가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시 ‘공원’도 그렇지요. 저는 특히 ‘그 영원의 한순간’이라는 구절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이토록 짧으면서도 아득히 길고, 수백만 년보다 더 긴 여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짧아서 안타까운, 우리 생에서 가장 황홀한 ‘그 영원의 한순간’!

이 화창한 봄날 시 한 줄이 우리를 전율케 합니다. 먼 우주를 관통한 빛줄기가 지구의 한 공원에 닿았다가 수백만 년 이상 은밀하게 간직해야 할 비밀을 발견하고 멈칫 움직임을 멈추는 ‘그 영원의 한순간’과 함께 말입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