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書히 스며드는 벚꽃 맛집…"책 읽는 재미, 책 밖에도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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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서의 책이 머무는 집
'북크닉' 하기 좋은 남산도서관
1922년 경성부립도서관이 모태
故 박완서 "꿈도 못꿔본 별천지"
명동서 소공동 옮겼다가 남산으로
작년 10월 개관 100주년 맞아
잡지 열람 공간을 카페처럼 바꿔
책 읽다 마주하는 벚꽃의 '희열'
피크닉 떠나듯 책소풍 어떠세요
'북크닉' 하기 좋은 남산도서관
1922년 경성부립도서관이 모태
故 박완서 "꿈도 못꿔본 별천지"
명동서 소공동 옮겼다가 남산으로
작년 10월 개관 100주년 맞아
잡지 열람 공간을 카페처럼 바꿔
책 읽다 마주하는 벚꽃의 '희열'
피크닉 떠나듯 책소풍 어떠세요
지난겨울부터 이날만을 기다려왔습니다. 1월의 어느 밤, 2023 한경 신춘문예 시상식 뒤풀이 자리. 소설가 은모든 작가는 서울 남산도서관에 가보라고 했죠. ‘책 관련 공간을 소개하는 코너를 해보려는데 추천해줄 곳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말이에요.
술이 불콰하게 오른 저는 웃고 말았죠. “에이, 거긴 너무 유명하잖아요.” 그러자 은 작가가 ‘진실의 미간’을 좁히며 말했어요. “벚꽃 필 때쯤 가보세요. 거기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벚꽃 맛집이 있거든요.”
은 작가가 콕 집어 지목한 벚꽃 명당은 남산도서관 2층 정기간행물실 옆 야외석입니다. 지난해 10월 개관 100주년을 맞아 정기간행물실은 새 단장을 했어요. 신문과 잡지를 열람하던 공간을 카페처럼 꾸미고 노트북도 빌려 쓸 수 있도록 했죠. 디지털라운지로 이름까지 바꿨어요.
벚꽃이 만개하자마자 남산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디지털라운지에서 유리문을 열고 나갔더니 탄성이 절로 나왔어요. 2층 야외에 마련된 휴게실의 이름은 남산하늘뜰. 푸른 하늘 아래 흐드러진 벚꽃이 남산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탁 트인 공간이어서 저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마셔 보게 됩니다. 남산도서관에서 남산타워로 이어지는 ‘사람 반 벚꽃 반’ 벚꽃길도 내려다 보이더군요.
남산하늘뜰은 남산도서관과 서울시, 롯데홈쇼핑, 서울교육청, 한국환경공단, 구세군이 함께 조성했어요. 현수막과 폐의류를 재활용해 이용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와 탁자를 제작했어요. 섬유패널로 만든 널찍한 탁자를 손으로 두드리면 ‘통통’ 경쾌한 소리가 나죠. 마름모꼴로 이어진 긴 의자는 아래를 비워서 책장처럼 활용해요. 이곳에서 봄바람이 살랑이는 날 커피 한 잔과 함께 책 한 권을 펼쳐 볼까요. 여유롭고, 한가하고, 낭만적이고, 일상이 멈춘 듯 호사스러운 시간을 만끽하는 거죠. 사람들은 책소풍이라는 뜻으로 북크닉(book+picnic)이라고도 하네요.
남산도서관에서는 3월부터 11월까지 ‘북크닉 세트’를 무료로 빌려줘요. 소풍 바구니에 사서들이 직접 골라준 책 두 권, 사진을 찍으면 진짜 꽃처럼 생생하게 나오는 조화, 돗자리 등이 들어 있어요. 남산도서관 1층 정문 입구 탁자에서 자율 대여가 가능합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해 신청서만 제출하면 됩니다.
남산도서관 옆 공원에는 ‘다람쥐문고’라는 둥근 원 모양의 조그만 책장도 설치돼 있어요. 숲속 다람쥐가 도토리 까먹듯이 야외에서 책을 야금야금 읽고 다시 책장에 넣어두는 거죠. 남산도서관은 매력적인 건축물입니다. 한양대 총장을 지낸 건축가 남계 이해성 교수가 설계했어요. 근대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굳이 봄날이 아니더라도 들러볼 만한 곳이죠.
남산도서관이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남산도서관의 출발은 일제시대 경성부립도서관이었습니다. 1922년 지어진 서울시 최초의 공립도서관이죠. 당시 위치는 명동성당 근처였습니다. 3·1운동에 놀란 일제가 식민지 교화 목적으로 한성병원 건물을 고쳐 도서관으로 만들었어요. 의도는 불순했지만 책을 접하기 힘들었던 시대에 단비 같던 공간이었어요. 오죽하면 소설가 고(故) 박완서 선생은 이곳을 “그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꿈도 못 꿔 본 별천지”이자 “꿈의 세계”라고 했을까요.
그는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남산도서관 이야기를 적었죠. “못다 읽은 책을 그냥 놓고 와야 하는 심정은 내 혼을 거기다 반 넘게 남겨 놓고 오는 것과 같았다.”
남산도서관은 이후 소공동으로 옮겨갔다가 1967년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았어요. 그때는 ‘왜 공공도서관을 교통이 안 좋은 곳에 짓냐’는 비판도 있었대요. 그때만 해도 공공도서관이 흔치 않았으니 접근성이 더욱 중요했겠죠.
하지만 도심의 소음 대신 남산의 풍광이 도서관을 감싼 덕에 독서의 정취가 깊어졌다는 장점도 있어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는 이런 대목이 나오죠.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책 읽다가 벚꽃을 마주하는, 그 희열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남산도서관
△서울 용산구 소월로 109
△디지털라운지 기준 이용시간 (평일 09:00 ~ 18:00 / 토·일 09:00 ~ 17:00)
△매월 첫째·셋째 월요일 및 법정공휴일 휴관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술이 불콰하게 오른 저는 웃고 말았죠. “에이, 거긴 너무 유명하잖아요.” 그러자 은 작가가 ‘진실의 미간’을 좁히며 말했어요. “벚꽃 필 때쯤 가보세요. 거기에 사람들이 잘 모르는 벚꽃 맛집이 있거든요.”
은 작가가 콕 집어 지목한 벚꽃 명당은 남산도서관 2층 정기간행물실 옆 야외석입니다. 지난해 10월 개관 100주년을 맞아 정기간행물실은 새 단장을 했어요. 신문과 잡지를 열람하던 공간을 카페처럼 꾸미고 노트북도 빌려 쓸 수 있도록 했죠. 디지털라운지로 이름까지 바꿨어요.
벚꽃이 만개하자마자 남산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디지털라운지에서 유리문을 열고 나갔더니 탄성이 절로 나왔어요. 2층 야외에 마련된 휴게실의 이름은 남산하늘뜰. 푸른 하늘 아래 흐드러진 벚꽃이 남산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탁 트인 공간이어서 저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마셔 보게 됩니다. 남산도서관에서 남산타워로 이어지는 ‘사람 반 벚꽃 반’ 벚꽃길도 내려다 보이더군요.
남산하늘뜰은 남산도서관과 서울시, 롯데홈쇼핑, 서울교육청, 한국환경공단, 구세군이 함께 조성했어요. 현수막과 폐의류를 재활용해 이용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와 탁자를 제작했어요. 섬유패널로 만든 널찍한 탁자를 손으로 두드리면 ‘통통’ 경쾌한 소리가 나죠. 마름모꼴로 이어진 긴 의자는 아래를 비워서 책장처럼 활용해요. 이곳에서 봄바람이 살랑이는 날 커피 한 잔과 함께 책 한 권을 펼쳐 볼까요. 여유롭고, 한가하고, 낭만적이고, 일상이 멈춘 듯 호사스러운 시간을 만끽하는 거죠. 사람들은 책소풍이라는 뜻으로 북크닉(book+picnic)이라고도 하네요.
남산도서관에서는 3월부터 11월까지 ‘북크닉 세트’를 무료로 빌려줘요. 소풍 바구니에 사서들이 직접 골라준 책 두 권, 사진을 찍으면 진짜 꽃처럼 생생하게 나오는 조화, 돗자리 등이 들어 있어요. 남산도서관 1층 정문 입구 탁자에서 자율 대여가 가능합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해 신청서만 제출하면 됩니다.
남산도서관 옆 공원에는 ‘다람쥐문고’라는 둥근 원 모양의 조그만 책장도 설치돼 있어요. 숲속 다람쥐가 도토리 까먹듯이 야외에서 책을 야금야금 읽고 다시 책장에 넣어두는 거죠. 남산도서관은 매력적인 건축물입니다. 한양대 총장을 지낸 건축가 남계 이해성 교수가 설계했어요. 근대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굳이 봄날이 아니더라도 들러볼 만한 곳이죠.
남산도서관이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남산도서관의 출발은 일제시대 경성부립도서관이었습니다. 1922년 지어진 서울시 최초의 공립도서관이죠. 당시 위치는 명동성당 근처였습니다. 3·1운동에 놀란 일제가 식민지 교화 목적으로 한성병원 건물을 고쳐 도서관으로 만들었어요. 의도는 불순했지만 책을 접하기 힘들었던 시대에 단비 같던 공간이었어요. 오죽하면 소설가 고(故) 박완서 선생은 이곳을 “그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꿈도 못 꿔 본 별천지”이자 “꿈의 세계”라고 했을까요.
그는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남산도서관 이야기를 적었죠. “못다 읽은 책을 그냥 놓고 와야 하는 심정은 내 혼을 거기다 반 넘게 남겨 놓고 오는 것과 같았다.”
남산도서관은 이후 소공동으로 옮겨갔다가 1967년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았어요. 그때는 ‘왜 공공도서관을 교통이 안 좋은 곳에 짓냐’는 비판도 있었대요. 그때만 해도 공공도서관이 흔치 않았으니 접근성이 더욱 중요했겠죠.
하지만 도심의 소음 대신 남산의 풍광이 도서관을 감싼 덕에 독서의 정취가 깊어졌다는 장점도 있어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는 이런 대목이 나오죠.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책 읽다가 벚꽃을 마주하는, 그 희열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남산도서관
△서울 용산구 소월로 109
△디지털라운지 기준 이용시간 (평일 09:00 ~ 18:00 / 토·일 09:00 ~ 17:00)
△매월 첫째·셋째 월요일 및 법정공휴일 휴관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