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기밀문서 봉인 해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암살만큼 호사가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는 사건도 드물다. 1963년 11월 22일 사건 발생 이후 지금까지 케네디 암살 의혹과 관련한 책만 1000권이 넘는다.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7년 관련 기밀문서 2891건이 한꺼번에 봉인 해제됐다. 그럼에도 온갖 음모론을 속 시원히 해결해줄 내용은 없었다. 암살범 리 하비 오스왈드의 범행 동기와 쿠바·소련·미국 마피아 및 보수 세력 등 배후 실체, 오스왈드를 경찰서에서 사살한 나이트클럽 사장 잭 루비와 그의 측근들, 사건 취재기자 등 10명이 넘는 관련자의 죽음도 여전히 미궁이다.

6·25전쟁에 대한 북한의 북침설 주장이 허구임을 결정적으로 확인해준 것도 한 건의 기밀문서였다. 2020년 러시아 현대사 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옛 소련의 기밀문서를 보면 소련은 1960년대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 시절부터 북한의 남침을 내부적으론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남침일이 1950년 6월 25일이 된 것도 김일성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군사행동 시작일로 결정됐다는 내용 등이 문서에 적시돼 있다.

외교부가 어제 1992년 작성된 2361권, 36만쪽 분량의 외교문서를 비밀 해제했다. 30년이 지난 외교 기밀문서를 봉인 해제하도록 하는 국가기록물관리규정에 따른 것이다. 1992년은 북한 핵이 국제사회 이슈로 부각되던 시절로 북한과 미국의 첫 고위급 회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시설 사찰, 한·중 수교를 둘러싼 주변국의 움직임에 대한 사료들이 담겨 있다. 류승완 감독의 박진감 넘치는 수작 ‘모가디슈’로 유명해진 1991년 ‘소말리아 남북 공관원 탈출’ 외교전문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모든 정보는 공개가 원칙이다. 그러나 권력은 자신들의 실수를 덮고 대중의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숨기려 드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기밀거리가 안 되는 사안도 감추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논란이 된 김정숙 여사의 옷·구두 구입 비용 등이 떠오른다. 법원은 이를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인정하지 않아 공개하라고 했으나, 임기가 끝나면서 기존 법에 따라 대통령기록물로 이관돼 유야무야 묻혀 버렸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