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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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가방회사 에틀랜틱러기지컴퍼니의 데이비드 블룸 이사는 여행용 가방에는 왜 바퀴가 없을까 의아했다. 무거워 허리가 아프고, 때로는 비싼 짐꾼을 고용해야 했다. 게다가 바퀴를 다는 건 생산비용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기존 디자인과 유통망에도 잘 맞았다. 하지만 회장은 블룸의 기대와 달리 도대체 누가 바퀴 단 가방을 사겠느냐며 비웃을 뿐이었다.

다이슨과 여행용 가방

전문가들은 혁신을 크게 두 형태로 구분한다. 주어진 문제나 전문 분야를 더 깊이 파고드는 예측 가능한 혁신과 예전에는 연관성이 없던 두 분야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융합하는 혁신이다. 다이슨은 전자의 대표적인 예다. 제임스 다이슨은 자신이 만든 진공청소기 디자인을 집요하게 수정한 끝에 사이클론 집진기의 크기를 조정해 공기에서 먼지를 분리해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그 효율은 높아졌고, 깊이 있는 지식이 쌓여 갔다. 소위 ‘점진적 혁신’이다.

블룸의 여행용 가방은 ‘재결합적 혁신’이다. 대개 재결합 혁신은 극적이다. 다른 영역에 존재하던 아이디어를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때문이다. 과학 작가 맷 리들리는 재결합적 혁신을 유성생식에 빗대기도 한다. 서로 다른 개체의 유전자가 합쳐지면서 발생하는 변이의 누적으로 생물학적 진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만약 수십억 년 전 미생물이 유전자 교환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후 동물들이 성적 결합을 통해 이를 지속하지 않았다면 다리나 신경, 뇌를 구성하는 유전자들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생각의 아웃사이더

결합 전에는 각 영역의 독립적 아이디어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결합은 탄성을 부르는 새로움으로 이어진다. 이론 분야도 마찬가지다. 연관이 없어 보이던 심리학과 경제학이 결합하자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가 탄생했다. 다양성은 이런 재결합 혁신의 핵심요소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낯선 것과 익숙한 것, 외부자와 내부자, 음과 양 등을 한데 모으는 과정이다. 문제는 재결합 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결합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유독 이 분야에 강점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한다. 바로 생각의 아웃사이더들이다. 에스티 로더, 헨리 포드, 일론 머스크, 월트 디즈니, 세르게이 브린, 제리 양, 아리아나 허핑턴, 피터 틸 등 이름만으로도 어떤 업적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이민자 혹은 그 가족이라는 점이다.

2017년 12월 포천 500대 기업 가운데 43%가 이민자 혹은 그 자녀가 창업했으며, 상위 35개 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그 비율은 무려 57%로 높아진다. 이들은 기술과 특허 생산에서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기여를 했으며, 하버드경영대학원 연구에서는 이민자가 창업한 기업이 더 빨리 성장하고 더 오래 생존했다. 이들의 성과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다른 문화와 일 처리 방식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국가에서 아이디어나 특정 기술을 볼 때 수정하거나 재결합하기 쉬운 부분을 먼저 찾는다. 또한 이들은 두 문화를 경험한 덕분에 아이디어를 결합할 수 있는 범위도 넓다. 현재 상황에 의문을 던지며 다양한 경험으로 재결합하며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양성의 중요성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산업혁명의 두 번째 단계는 전기의 등장으로 가능했다. 증기기관이 전기모터로 대체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생산성이 증가한 것은 전기모터가 등장하고 무려 25년이나 지난 뒤였다. 바퀴를 거부했던 여행용 가방 기업의 회장과 마찬가지로 많은 경영자가 증기기관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공장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동력 분산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음에도 단일 동력인 증기기관 자리에 전기모터를 놓았다. 현재 상황에 익숙해진 탓에 현상을 해체하거나 다르게 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프레임을 스스로 바꾸기란 매우 어렵다.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이유다. 다양한 성별, 인종, 출신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이들을 소수자로 분류해 배려 차원에서 사회적 활용이 논의됐다. 하지만 재결합 혁신의 시각에서 다양성은 효율성을 위해 필요한 가치다. 디지털 경제의 핵심은 서로 다른 아이디어가 0과 1로 변화돼 결합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디지털 경제의 성공은 다양한 시각을 바탕으로 한 집단지성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