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故 현미, '영정 속 밝은 미소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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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의 빈소가 7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향년 85세.
경찰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4일 오전 9시3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김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73)씨가 발견,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고인은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나 1957년 미8군 무대를 통해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무용수로 시작했지만 스케줄을 갑자기 펑크낸 다른 가수 대신 노래를 부른 일을 계기로 연예계의 길을 걸었다. 1962년 '밤안개'가 수록된 1집 앨범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주로 이봉조의 곡을 불렀으며, 이미자·패티김·최희준·한명숙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한 당대 최고의 여가수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재즈풍의 독특한 창법으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2년 ‘내 사랑아’, 1963년 ‘보고 싶은 얼굴’, 1965년에는 김기덕 감독 연출,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때는 말없이’의 주제곡을 불러 당대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현미는 200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며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 할 것이다.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모습"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한가수협회는 6일 "유족과 협의한 결과 대선배 현미의 장례식은 7일~11일 서울 중앙대학교 장례식장 특실 1호에서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엄수된다"고 밝혔다.
장례위원장은 대한가수협회 감사 서수남이며, 장례위원은 협회 임원 이사진이 맡는다.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경찰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4일 오전 9시3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김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73)씨가 발견,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고인은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나 1957년 미8군 무대를 통해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무용수로 시작했지만 스케줄을 갑자기 펑크낸 다른 가수 대신 노래를 부른 일을 계기로 연예계의 길을 걸었다. 1962년 '밤안개'가 수록된 1집 앨범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주로 이봉조의 곡을 불렀으며, 이미자·패티김·최희준·한명숙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한 당대 최고의 여가수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재즈풍의 독특한 창법으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2년 ‘내 사랑아’, 1963년 ‘보고 싶은 얼굴’, 1965년에는 김기덕 감독 연출,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때는 말없이’의 주제곡을 불러 당대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현미는 2007년 데뷔 50주년을 맞아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80년이든 90년이든 이가 확 빠질 때까지 노래할 것"이라며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 할 것이다.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모습"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한가수협회는 6일 "유족과 협의한 결과 대선배 현미의 장례식은 7일~11일 서울 중앙대학교 장례식장 특실 1호에서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엄수된다"고 밝혔다.
장례위원장은 대한가수협회 감사 서수남이며, 장례위원은 협회 임원 이사진이 맡는다.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