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이력의 창업가는 흔합니다. 그럼에도 정민채 테이크원컴퍼니 대표의 이력은 시선을 끕니다. 게임사에서 일하다 드라마 제작 PD가 됐고, 이후엔 투자사에서 일하다가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2019년 게임 ‘BTS월드’를 만들어 자본시장에 이름을 알린 그가 ‘문제적 분야’ 아이돌 지식재산권(IP) 기반 게임에 다시 도전합니다. 팬덤과 게이머를 동시 공략해야 하는 까다로운 영역에서, 창업가는 2년간 무엇을 준비했는지 한경 긱스(Geeks)가 물었습니다.
'블랙핑크 더 게임(BPTG)'의 공식 키 아트(key art). 테이크원컴퍼니 제공
'블랙핑크 더 게임(BPTG)'의 공식 키 아트(key art). 테이크원컴퍼니 제공
지난 3월 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블랙핑크 월드투어에 6만 명의 관객이 몰렸다. 음악에 맞춰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던 차, 전광판에 생소한 단어가 나타났다. ‘BPTG’. 의미를 알 수 없는 알파벳의 나열은 SNS를 타고 퍼져나갔다. BPTG란 이름으로 생겨난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일주일 만에 각각 20만 명과 30만 명의 팔로어가 모였다. 계정 속 영상에서 멤버들이 웃고 있는 모습은 기존에 공개된 것이 아니었다.

BPTG의 정체는 이달 들어 밝혀졌다. ‘블랙핑크 더 게임(Black Pink The Game)’의 약자였다. 게임 스타트업 테이크원컴퍼니가 전작 ‘BTS 월드’의 아쉬움을 떨쳐내고자 2년간 준비한 작품이다. 정민채 테이크원컴퍼니 대표는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예인 지식재산권(IP) 기반 게임이 재미없다는 편견을 반드시 부수겠다”고 강조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게임사 근무를 거쳐 창업가가 된 그의 포부다.

‘추노’ 만들고 게임사 창업 도전

정 대표는 영국 런던대에서 미디어학을 전공하고 넷마블과 초록뱀미디어에서 일했다. 각각 해외 전략과 드라마 제작 PD 직무를 맡았다. 야구 게임 ‘마구마구’, 드라마 ‘추노’ ‘지붕 뚫고 하이킥’ 등이 그의 손을 탔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모든 일을 경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후엔 벤처캐피털(VC)에서 투자심사역을 했다. “게임사와 엔터테인먼트사의 합종연횡이 콘텐츠 산업의 미래”라고 주창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결국 2016년 직접 창업을 택했다.

정민채 테이크원컴퍼니 대표. 테이크원컴퍼니 제공
정민채 테이크원컴퍼니 대표. 테이크원컴퍼니 제공
테이크원컴퍼니가 시장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19년 BTS월드를 만들면서다. BTS가 등장하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40주년을 넘어선 영국 ‘골든조이스틱 어워드’에서 수상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게임에서만 접할 수 있는 오리지널 영상과 음성을 넣은 점이 통했다. 관심이 장점만은 아니었다. 초반 다운로드 흥행 이후엔 비판적 평가도 이어졌다. 주로 “게임이 단조롭다”는 지적이었다. 퍼블리셔 역할을 한 넷마블 주가는 오르내렸다.

차기작에선 ‘유명 IP’와 ‘게임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했다. 정 대표는 “일단 BTS를 이을 IP에다, 게임 출시 시점인 2년 뒤에도 글로벌에서 인기일 그룹을 섭외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해외 SNS 조사를 통해 블랙핑크를 최종 낙점하고는,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설득에만 반년을 썼다. 소속사에선 반기지 않았다. 처음엔 ‘블랙핑크는 음반과 콘서트에 집중한다’며 고사했다. 속내는 IP 기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선 때문이었다. “당시엔 IP 기반 게임이라는 것도 별로 없었지만, 있더라도 질이 낮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 대표는 “팬들이 상시 모여서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형 게임이 있어야 한다”는 제안을 계속 펼쳤다. 결국 2021년부터 BPTG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다음 넘어야 할 산은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였다. 정 대표는 “BTS월드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BTS의 사진과 영상이 있다는 점”이라면서도 “BTS가 스케줄 문제로 촬영이 불가능해지다 보니 한정된 자원으로 스토리 라인을 꾸려야 했다”고 소회했다. 소속사의 지원사격에도 물리적으로 사진과 영상이 무한할 수 없었다. BPTG에 멤버별 3차원(3D) 아바타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신작 개발에 100명 투입…해외 팬 공략

구글플레이에 게재된 BPTG의 인게임 화면. 블랙핑크의 소속사를 구현했다. 멤버 '제니'가 3차원(3D) 아바타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테이크원컴퍼니 제공
구글플레이에 게재된 BPTG의 인게임 화면. 블랙핑크의 소속사를 구현했다. 멤버 '제니'가 3차원(3D) 아바타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테이크원컴퍼니 제공
정 대표는 BPTG를 특정 장르로 정의하지 않았다. 유저가 블랙핑크의 프로듀서가 되어 멤버를 성장시키는 게임이지만, “모바일 게임 4~5개를 합친 것과 같다”고 했다. 포토 카드를 활용한 퍼즐 게임, 소속사를 경영하는 시뮬레이션, 아바타 꾸미기 등 타 장르 게임 요소가 반영되면서다. 마찬가지로 멤버별 오리지널 사진과 영상을 확보하는 데도 주력했다. 멤버들이 5시간씩 돌아가면서 촬영해, 한번 찍을 때마다 20시간을 썼다. 정 대표는 “멤버들이 의상 선택도 직접 하고, 스태프와 어울려 간식도 자주 먹는 등 털털한 성격이라 수월했다”고 말했다. “멤버 ‘로제’가 떡볶이를 특히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고도 했다.

오히려 인력 수급에서 난관을 겪었다. “아이돌 IP로 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업계 사람들이 많습니다. 게임 디자이너, 개발자들 영입이 쉽지 않았습니다.” 구상 중인 게임성으로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재 테이크원컴퍼니 인력은 200명인데, 이 중 100명이 BPTG 프로젝트에 투입돼 있다. 다른 게임사엔 없는 ‘작가팀’ ‘촬영팀’ ‘프로덕션 PD팀’ 진용도 갖췄다. ‘히트작’을 만들자며 모인 사람들이다.

정 대표는 ‘집합론’을 꺼내 들었다. 팬덤과 게이머 사이의 교집합이 현재까지 국내 연예인 IP 게임들의 타깃이었다면, 이젠 합집합을 노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블랙핑크의 팬이지만 게임에 관심 없는 사람도, 게임을 즐기지만 블랙핑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잠재 유저가 될 수 있도록 계획했다는 것이다. 과금 요소를 줄이고 유저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기능을 넣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했다. 게임인 점을 숨기고 영상을 퍼트린 마케팅은 가수들의 컴백 방식을 참고했다. BPTG의 사전 예약자는 100만 명을 돌파한 상태다. 그는 “BPTG와 같은 게임의 장점은 글로벌 확장에 유리하단 것”이라며 “제대로 된 성공 사례를 남겨 업계에 남아있는 부정적 인식을 없애겠다”고 말했다. 게임 성패는 공개 시점인 2분기에 결정될 전망이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