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 김용범 CP, 안준영 PD /사진=한경DB
'프로듀스 101' 김용범 CP, 안준영 PD /사진=한경DB
엠넷(Mnet) '프로듀스' 조작 사태가 재주목받고 있다. 시청자 투표 결과를 제멋대로 바꾸며 공정성의 가치를 훼손했던 PD들이 속속 CJ ENM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3년 전, 시청자 기만이라는 비판에 당시 허민회 CJ ENM 대표이사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리고 현재, 과연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생태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엠넷은 '프로듀스' 이후에도 각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선보여 왔다. 지금도 글로벌 남자 아이돌 그룹을 뽑는 '보이즈 플래닛'이 방송 중이다. 시청자들을 '스타 크리에이터'라 부르고 이들의 투표로 데뷔 멤버를 결정하는 식이다. '국민 프로듀서'를 앞세웠던 '프로듀스'와 구성이 똑같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방송 전부터 유독 '공정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프로듀스' 사태 이후로 CJ ENM은 '보이즈 플래닛'은 물론 가요 시상식인 'MAMA 어워즈'까지 투표가 동반되는 모든 과정에 외부 기관인 삼일 PwC를 참여시켜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제작과 투표 관리 시스템을 분리해 조작이 불가능한 구조임을 거듭 밝혔다. 하지만 '프로듀스' 조작 사태로 실형을 살고 나온 안준영 PD, 김용범 CP가 줄줄이 엠넷에 복귀하며 '보여주기식 공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제자리걸음이라는 비판과 함께 고질적인 아이돌 서바이벌의 생태계 또한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현재 동시에 방송 중인 '보이즈 플래닛'과 MBC '소년 판타지'는 모두 남자 아이돌 그룹을 선정하기 위한 과정을 그린다. '보이즈 플래닛'은 당초 연습생 99명과 시작했고, '소년 판타지'에는 42명이 참가했다.
Mnet ‘보이즈 플래닛’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Mnet ‘보이즈 플래닛’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1
업계에서는 연습생 인력 풀이 부족한 상황에서 방송사의 출연 압박이 부담스럽다는 하소연이 터져나왔다. 한 관계자는 "가수 지망생들이 대형 기획사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연습생 보유 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뚜렷하다. 중소 기획사에서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얼굴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데뷔를 앞두고 다른 곳에 소속돼 있는 연습생들을 사 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형 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은 출연하지 않으니 중소 기획사 위주로 오디션 프로그램 제의가 들어온다. 추후 방송 기회 등을 고려하면 외면할 수도 없는 제안"이라면서 "연습생을 내보냈다가 실제로 데뷔 조에 들면 자사에서 계획한 데뷔 계획이 엎어질 수도 있어서 속앓이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점점 길어지는 활동 계약 기간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프로듀스' 시즌1을 통해 결성된 아이오아이의 계약기간은 1년이었다. 그 뒤에 나온 워너원은 1년 6개월, 아이즈원은 2년 6개월, X1은 조작 논란으로 활동하진 못했지만 설정된 계약기간이 무려 5년(2년 반은 완전체 활동, 2년 반은 개인 활동 병행 가능)이었다. '소년판타지'와 '보이즈 플래닛'으로 결성되는 그룹 또한 짧지 않은 계약 기간을 적용받을 전망이다.

한 가요 관계자는 "데뷔 조에 합류하게 되면 사실상 최고 전성기를 다 보낸 후에 본 소속사로 돌아오게 된다. 개인으로 활동하거나 새로운 팀을 다시 결성하는 등 사실상 새로운 계획을 짜야 한다. 프로그램 출연 전 활동하던 그룹이 있었던 멤버들의 경우도 무조건 그 팀으로의 복귀를 장담할 수 없다. 인지도, 활동 영역 등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들이 생긴다"고 말했다.

일부 참가자들이 카메라에 많이 잡히는 것과 관련해서도 시청자들의 불만 제기가 반복된다. '보이즈 플래닛' 시청자인 A(33)씨는 "첫 방송부터 유독 서사를 부여해 주거나 자주 카메라에 담아주는 참가자들이 있더라. 시청자 투표에 영향을 미치니 이 또한 공정성 논란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면서 "투표 관리 방법을 개선했을지언정, 결국 구성적으로는 개선된 게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안 PD, 김 CP의 복귀에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결국 이런 이유에서다. 조작의 책임을 투표 방식 개선 등 표면적인 대안으로 한정지을 것이 아닌, 제작 과정 전반에서 투명함을 보장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의 구태에서 벗어날 새로운 방식을 고심하는 등 뿌리부터 손보아야 비로소 잃어버린 시청자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테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