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몸비族' 보호한다는 바닥신호등, 진짜 안전한가
지난 6일 저녁 경기 수원시 조원동의 한적한 횡단보도. 지난해 시가 4000만원을 들여 바닥에 발광다이오드(LED) 신호등을 설치한 이 횡단보도를 한 시간 동안 오간 시민 열 명 가운데 여덟 명은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인 채 길을 건넜다. 경찰 관계자는 “바닥 신호등이 설치된 뒤 ‘스몸비(스마트폰+좀비)’족이 주위를 살피지 않고 무작정 길을 건너는 사례가 더 많아졌다”고 우려했다.

○바닥 신호등 보기에 좋지만…

횡단보도마다 수천만~1억원 이상 투입되는 바닥 LED 신호등이 오히려 안전에 취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시각적 효과도 있고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신호가 바뀌는 걸 알 수 있어 편리하지만 오히려 교통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바닥 신호등은 2019년 처음 도입됐다. 보통 도로와 인도의 경계에 가로 30㎝, 세로 10㎝, 높이 6㎝ 크기로 LED를 설치한 구조로 편도에 약 1000만원이 들어간다. 지방자치단체는 미관에도 좋고 어린이, 노인 등 교통 약자 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경쟁적으로 설치를 늘리는 추세다. 2019년 61개였던 바닥 신호등은 2020년 291개, 2021년 1167개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작년 9월까지 1638개로 증가했다.

바닥 신호등 설치엔 횡단보도마다 1700만~21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예를 들어 일반 차도에 바닥 신호등을 모두 설치할 경우 총 8개를 설치해야 하는데 평균 8000만원을 써야 한다. 전국에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는 지난해 11월 기준 12만1116개다. LED를 모두 설치할 경우 2조4223억원가량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보행자가 밟고 다닐 수밖에 없는 LED 신호등은 고장이 잦은 편이어서 유지·관리비가 계속 투입되는 구조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바닥신호등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 설치되기도 하는데, 이는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라며 “정밀한 평가를 통해 사고 위험이 높은 곳 등에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행 원칙에 벗어나 사고위험 높여

바닥 신호등이 보행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은 시민들에게 횡단보도 보행 시 ‘서다’ ‘보다’ ‘걷다’ 등 방어보행 3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홍보한다. 보행 시 좌우 양옆을 살피는 게 기본이라는 의미다. 경찰 관계자는 “보행자의 고개를 땅으로 향하게 유도하면서 결과적으로 안전 보행을 막게 된다”며 “길 건너 막대형 신호등을 바라봐야 도로 위 차량 흐름을 온전히 살필 수 있다”고 했다.

휴대폰으로 인한 보행사고 비중은 압도적이다. 삼성 교통안전문화연구소 분석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접수되는 1000건 안팎의 ‘보행 중 주의분산 사고’ 보험 신청 가운데 61.7%가 스마트폰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설치 가이드라인이 없는 점도 문제다. 신호등은 각 시·군·구가 교통 경찰과 협의해 설치한다. 평소 도로 교통을 관장하는 경찰이 설치 의견을 내면 시·군·구가 예산을 세워 사업을 집행하는 방식이다. 바닥 신호등의 경우 경찰청이 2017년 10월 도입을 검토했고, 2018년 11개소 시범운영, 2019년 3월 표준지침을 마련해 배포했다. 각 시·군·구가 이를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설치할 곳을 찾는 방식이다. 지침에 왕복 4차선 도로에 설치하라고 권고돼 있을 뿐 구체적 지침이 없다.

수도권의 한 지자체 정책특보는 “선출직 공무원들은 재선이 목표인데 바닥 신호등을 많이 설치하는 것이 지방행정을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