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7일 4대 시중은행에서 5조원을 대출 받기로 한 것은 일차적으로 2차전지 소재 등 미래 성장 동력인 신사업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롯데는 앞으로 5년간 신사업과 화학, 유통, 호텔 등 기존 사업 부문에 총 37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자금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다. 여기에 작년 하반기 불거진 롯데건설발(發) 유동성 위기 우려를 완전히 불식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미래 사업 육성에 5조원 투입

"재무부담" 시장 우려에…롯데, 발빠른 대처
롯데지주는 지난해 향후 5년간 바이오의약품, 도심항공교통(UAM) 등 신사업에 15조2000억원, 화학과 유통 부문에 각각 9조3000억원, 8조1000억원 등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체 투자 규모(37조원) 중 신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1.0%에 달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유통, 화학에 집중된 그룹 사업 구조를 바꾸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라고 설명했다.

2030년까지 총 3조7000억원을 들여 국내에 세 개 바이오의약품 공장을 짓는 것도 이런 밑그림의 일환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미국 시러큐스 공장 인수를 완료하고 올해 본격적인 생산 활동을 시작했다. BMS와 최소 2억2000만달러 규모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계약을 맺었다.

롯데케미칼은 배터리 분리막 소재(PE) 생산 및 전해액 유기용매 4종(EC, DMC, EMC, DEC)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차전지용 양극박 생산 기업인 롯데알미늄은 글로벌 2차전지 수요가 급속하게 늘어남에 따라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금리 인상과 한국전력 회사채(한전채) 발행량 급증으로 회사채 발행이 여의찮은 것도 은행권에 손을 벌린 이유로 거론된다. 금융권에선 그동안 자금 조달에 보수적이던 롯데가 SK와 한화그룹처럼 재무적투자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선회한다는 방침을 밝혔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은행권과 맺은 이번 자금 조달 협약에 작년 10월 불거진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완전히 불식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해석한다. 롯데케미칼 등 롯데 주요 계열사는 ‘레고랜드 사태’ 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만기 연장(차환)이 어려워지자 1조5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대여하는 등 전방위적 지원을 했다.

이에 따라 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작년 말 일제히 “롯데건설에서 불거진 자금난이 그룹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며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등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의 기업(회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향후 6개월~1년 내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금경색 우려 불식”

경제계에선 이번 협약으로 롯데건설발 자금경색 우려는 일단 사그라들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소유한 부동산이 워낙 많아 일부만 유동화해도 유동성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5조원의 자금 수혈로 신용도를 단기간에 회복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롯데쇼핑,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롯데건설 등 롯데그룹 주요 17개 계열사의 순차입금(총차입금-현금성자산)은 작년 9월 말 기준 28조475억원으로, 1년 전(23조2616억원)보다 20.5% 늘었다.

서민호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유동성 확보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롯데건설에 대한 자금 지원과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등으로 당분간 재무 부담 가중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롯데지주와 롯데케미칼 주가는 각각 1.71%, 0.22% 오른 2만9700원, 18만2900원에 마감했다.

하헌형/장현주/김보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