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기회 앞에서 두려움이 앞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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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콘텐츠 크리에이터
작년은 내게 기회의 해였다. 수많은 제안을 받았다. 그중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법한 좋은 기회도 몇 있었다. 절호의 찬스란 걸 알았지만 냉큼 수락하진 못했다. 망설임 없이 잡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기회, 하지만 망설여졌다. ‘내게 너무 과분한 기회가 아닌가? 상대가 나를 과대평가한 게 아닐까? 나의 실체를 알게 되면 실망하지 않을까?’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다 보니 때로는 행동하기가 망설여진다. 기쁜 한편 두려움이 앞서는 상황, 기회를 잡아야 할까?
대부분의 경우 잡는 편이 현명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스스로 ‘좋은 기회’라고 판단을 마쳤기 때문이다. 놓치기 아까운 제안이라는 것을 내심 알고 있다. 그 좋음의 크기가 클수록 상대적으로 자신이 작게 느껴질 수 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선 두려움이 따르는 법, 이럴 때일수록 기회를 잡아야 한다.
둘째, 기회 제공자가 다양한 리스크를 고려하고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기회는 성공과 다르다. 성공이 결과라면 기회는 입장권이다. 기회 제공자는 그 상대에게 모종의 과정을 경험할 권리와 책임을 넘겨준다. 그가 성공하면 믿고 맡긴 제공자도 성공적인 판단을 한 셈. 그렇기에 아무에게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제공자가 사회적 경험, 재력 등의 유무형 자원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본인을 믿어준 사람들을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자신을 못 믿겠다면 그들의 판단을 믿고 ‘고(GO)’ 해보자.
마지막으로, 기회를 흘려보냈을 때의 후회가 상상 이상으로 클 수 있다. “해보지 않은 자의 벌은 해본 자의 성공을 지켜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어차피 했어도 그저 그랬을 거야. 별로였을 거야’라며 ‘신포도 전략’을 쓸 때가 있다. 해본 자의 성공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여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해봤을 때의 결과는 실체지만, 해보지 않았을 때의 결과는 상상이다. 무한정 커질 수 있고 무기한 결말이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도 리스크는 분명 존재한다. 오픈 엔딩을 싫어한다면 더더욱 결말을 보는 쪽이 현명하다.
‘올해의 나’에게 일거리에 대한 걱정은 없다. 절호의 찬스를 꽉 붙잡은 ‘작년의 나’ 덕분이다.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크다. 해보지 않았는데 잘할 수 있을지, 나를 믿어준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하지만 어떻게든 다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도 공존한다. 힘들지 않을 거란 뜻이 아니다. 힘들인 만큼 역량이 커지고,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뿐이다. 작년 말 서울 성수동 한 카페의 소원 빌기 이벤트에 참여했다. ‘털고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시련만 있길’이라고 적었다. 올해도 이리저리 치여 아파할 것이다. 울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 훌훌 털고 웃을 예정이다.
대부분의 경우 잡는 편이 현명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스스로 ‘좋은 기회’라고 판단을 마쳤기 때문이다. 놓치기 아까운 제안이라는 것을 내심 알고 있다. 그 좋음의 크기가 클수록 상대적으로 자신이 작게 느껴질 수 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선 두려움이 따르는 법, 이럴 때일수록 기회를 잡아야 한다.
둘째, 기회 제공자가 다양한 리스크를 고려하고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기회는 성공과 다르다. 성공이 결과라면 기회는 입장권이다. 기회 제공자는 그 상대에게 모종의 과정을 경험할 권리와 책임을 넘겨준다. 그가 성공하면 믿고 맡긴 제공자도 성공적인 판단을 한 셈. 그렇기에 아무에게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제공자가 사회적 경험, 재력 등의 유무형 자원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본인을 믿어준 사람들을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자신을 못 믿겠다면 그들의 판단을 믿고 ‘고(GO)’ 해보자.
마지막으로, 기회를 흘려보냈을 때의 후회가 상상 이상으로 클 수 있다. “해보지 않은 자의 벌은 해본 자의 성공을 지켜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어차피 했어도 그저 그랬을 거야. 별로였을 거야’라며 ‘신포도 전략’을 쓸 때가 있다. 해본 자의 성공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여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해봤을 때의 결과는 실체지만, 해보지 않았을 때의 결과는 상상이다. 무한정 커질 수 있고 무기한 결말이 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도 리스크는 분명 존재한다. 오픈 엔딩을 싫어한다면 더더욱 결말을 보는 쪽이 현명하다.
‘올해의 나’에게 일거리에 대한 걱정은 없다. 절호의 찬스를 꽉 붙잡은 ‘작년의 나’ 덕분이다. 여전히 두려운 마음이 크다. 해보지 않았는데 잘할 수 있을지, 나를 믿어준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하지만 어떻게든 다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도 공존한다. 힘들지 않을 거란 뜻이 아니다. 힘들인 만큼 역량이 커지고,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뿐이다. 작년 말 서울 성수동 한 카페의 소원 빌기 이벤트에 참여했다. ‘털고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시련만 있길’이라고 적었다. 올해도 이리저리 치여 아파할 것이다. 울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 훌훌 털고 웃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