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뒷맛 개운찮은 은행 '상생 금융'
지난 2월 23일 하나은행부터 시작됐다. 이어 부산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을 거쳐 지난 4일 대구은행에서 마무리됐다. 최근 한 달여간 금융권의 이목은 이런 순서로 이뤄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시중은행 현장 방문에 쏠렸다. 은행들의 과도한 ‘이자 장사’와 ‘성과급 잔치’ 비판의 선봉에 선 이 원장이 이들 은행을 찾을 때마다 해당 은행은 기다렸다는 듯이 ‘상생 금융 방안’이란 이름의 대규모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이 원장의 은행 방문이 이어질수록 은행들의 상생 금융 적용 범위와 내용은 더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취약계층에서 출발하더니 고령층, 소상공인, 중소기업으로 지원 대상이 늘어났다. 직접적인 금융 지원도 타행 이체 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 면제에서 시작해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신용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 금리를 일괄적으로 내리겠다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상생 금융을 누가 더 많이 하는지를 놓고 은행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은행이 올해 약속한 대출금리 인하 액수는 7600억원가량이다. 우리은행이 2050억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 1903억원, 하나은행 1857억원, 국민은행 1820억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부산은행과 대구은행까지 합하면 6개 은행이 깎아주는 대출금리만 8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금리가 내려가는 와중에 은행들의 상생 금융안까지 더해져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최저금리는 1년 만에 연 3%대로 떨어졌다. 변동형 주담대와 신용대출 금리 하단도 연 4%대로 내려왔다.

지난해 은행들이 사상 최대 순이익을 거두면서 올해 들어 은행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금융소비자들은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상생 금융 방안을 환영하고 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이 원장을 부잣집 곳간을 털어 서민들에게 나눠주는 의적(義賊)에 비유하기도 하고, 그를 응원하는 팬카페까지 생겨났다. 금융당국도 예상을 뛰어넘는 은행들의 화답에 상당히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 원장의 행보를 놓고선 뒷말도 적지 않게 나온다. 금융권에선 이 원장이 한 달여간 6개 은행을 ‘순방’하며 강하게 압박하는 모습이 무술인의 ‘도장 깨기’와 같다고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선 이 원장이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번 은행 방문을 정치적 이벤트나 사전 선거운동으로까지 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지난주 이 원장을 초청해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공개적으로 시장 가격(금리)을 압박하고 이에 은행들이 상생 금융으로 대응하는 구조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압박이 시장의 금리 체계를 망가뜨리고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의 금리 결정에 개입할 때는 시장에 미칠 구조적인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이런 지적들에 대해 “당장 소비자가 느끼는 고통을 은행이 일부 분담한다는 취지로 이해해주면 좋겠다”며 “상생 금융 압박은 계속할 수 없고 올해까지의 단기적 조치”라고 했다. 은행들은 그나마 조금 숨통이 트이게 됐다는 반응이다. 이 원장과 금융당국은 이제 은행들이 본업에 집중하고 경쟁력과 리스크 관리 강화에 힘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