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올해 1분기 실적발표를 앞두고 현재 주가가 수익성에 비해 과대 평가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헤지펀드 등 금융기관은 미리 S&P500 선물 매도 계약을 큰 폭으로 늘렸다. 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인한 은행 위기 여파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거란 관측이다.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은 올해 1분기 S&P500에 편입된 기업의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6.8%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수익이 급격히 악화한 2020년 2분기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팩트셋이 애널리스트 전망치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S&P500 편입 기업의 매출은 1분기 동안 1.8%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망이 맞는다면 2020년 3분기 이후 가장 낮은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게 된다.

미 투자자문사 브라운어드바이저리의 에릭 고든 주식투자부문장은 WSJ에 "기업 이익 전망치만 살펴보면 우리는 이미 침체기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美 1분기 어닝시즌 시작 전부터 "현재 주가 수익에 비해 과대평가됐다"
1분기 실적이 악화할 거란 예상과 달리 주가는 올해 들어 상승세를 탔다. 올 초부터 6일까지 S&P500 지수는 7.34% 상승했다. 주가가 수익 전망치 대비 과도하게 상승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S&P500의 주가수익비율(PER) 평균값은 약 18배에 육박한다. 지난 10년 평균값인 17.3을 웃돈다.
美 1분기 어닝시즌 시작 전부터 "현재 주가 수익에 비해 과대평가됐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S&P500 지수와 주당순이익(EPS) 10년 평균값으로 산출한 실러의 PER은 지난 6일 29.27배를 기록했다. 지난 100년간 미국 증시의 실러의 PER 평균값은 17배였다. 경기 변동 요인을 제거해도 주가가 과대 평가됐다는 의미다. 실러 교수는 순이익에서 경기변동 요인을 제거한 경기조정 주가수익비율(CAPE) 이론으로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석학이다.

주가가 과대 평가됐다는 우려에 헤지펀드는 미리 매도를 준비하고 있다. 미 상품거래위원회(CFTC)는 S&P500 투기적 순포지션이 -32만 1500계약이라고 7일 발표했다. 투기적 순포지션은 헤지펀드 등 투기적(비 상업적) 금융기관이 시카고와 뉴욕 선물시장에서 체결한 매수미결제약정과 매도미결제약정의 차이를 가리킨다. 음수(-)값이 커질수록 매도 포지션 거래가 매수를 앞섰다는 뜻이다. CFTC는 매주 순포지션 결과를 발표한다.

CFTC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투기적 금융기관이 체결한 S&P500 선물에 대한 매도 미결제 약정 계약 건수가 매수 계약보다 32만건 많았다. 매도가 매수를 30만건 이상 웃돈 건 2020년 6월(-30만 3000건) 이후 처음이다. 당시 미 중앙은행(Fed)은 코로나19가 퍼진 뒤 처음으로 통화 긴축을 시사한 바 있다.
美 1분기 어닝시즌 시작 전부터 "현재 주가 수익에 비해 과대평가됐다"
헤지펀드가 주가 하락에 베팅한 배경엔 은행 위기가 있다. 지난해부터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가운데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 은행 등이 파산하며 신용 경색 위기가 고조됐다. 은행이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출 규모를 줄일 거라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자본비용이 이전보다 상승할 것이란 우려도 확산했다.

투자자들은 오는 14~19일 은행주의 1분기 실적발표일을 주시하고 있다. 실적에 따라 신용 경색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진단할 수 첫 번째 신호로 받아들여서다. 은행 실적을 살펴보면 미래 대출 기준을 강화할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오는 14일 JP모간과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이 1분기 실적을 공개한다. 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18일)와 US뱅코프(19일)이 실적을 발표한다.

이미 대출 기준이 더 엄격해지는 걸 염두에 둔 기업도 나온다. 스콧 두바 프라임 캐피털 최고재무책임자(CIO)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대출 심사 강화를 전제로 경제 전망을 재평가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우리 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측정하려 한다"고 말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