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실이 미국 정보기관에 감청당했다는 외신 보도는 여러 측면에서 신중하게 볼 일이다. 사실로 드러난다면 엄중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할 사안이다. 하지만 감청 경로, 유출 정보 수준 등 경위 파악이 먼저인 만큼 성급한 예단과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 마치 외교·안보전에서 생각도 못한 일인 양, 처음 있는 일인 양 흥분하고 과잉 대응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보름 앞두고 있어 폭로 시점부터 미묘한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국가안전보장회의 논의 내용까지 몰래 넘어간 만큼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 언론을 통한 유출 정보를 보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심지어 이스라엘 같은 미국의 전통 우방국 기밀도 있다. 한국을 특정한 정보 수집은 아닌 것이다. 드러난 한국 정보에는 우크라이나 포탄 제공 문제 등이 있어 러시아 관련설도 그냥 넘길 수 없다.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 연대를 흔들려는 러시아의 이간질 첩보 가능성이 미국에서 벌써 나왔다. 어떻든 여러 나라가 복합적으로 얽힌 현대 정보전쟁의 한 단면이 노정됐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보안의식이다. 한국의 안보·보안 인식에는 문제가 적지 않다. 과연 분단국가가 맞는지, 4강국 틈새에서 열전과 냉전, 다시 ‘신(新)냉전·신열전’으로 급변하는 시대의 최전선에서 생존해야 하는 국가가 맞나 싶을 때가 잦다. 핵 도발 뒤로 북한 해킹이 얼마나 빈번했나. 원자력연구원 핵융합에너지연구원 항공우주산업 항공우주연구원이 북한 해커에게 뚫렸다. 군 해킹에 암호화폐와 서울대병원의 주요 인사 진료 기록까지 털렸다. 중국은 또 어떤가. 미국과 동맹국을 겨냥한 중국의 첩보 총력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군을 노린 연간 수만 건의 중국발 해킹은 그 일부일 뿐이다. 러시아도 이런 사이버전에 빠질 리 없다.

지난해 ‘카카오 먹통’ 사고 때 마비된 카톡 행정을 보면 보안의식 부재는 공공부문에 만연해 있다. 미국 감청에 흥분할 게 아니라 우리도 조 바이든 정부의 내밀한 기류까지 어떻게든 확보하도록 각성해야 한다. 그게 현대 국가의 정보 외교이고 생존 철칙이다. 더구나 한국은 여전히 정전(停戰)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