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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리더의 시각
고은진 KB증권 WM투자전략부 상품전략팀장
[마켓PRO] "지금도 늦지 않다"…반도체 봄기운 도는 이유 세가지
[마켓PRO] "지금도 늦지 않다"…반도체 봄기운 도는 이유 세가지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인상으로 미국의 기준금리는 밴드상단을 기준으로 5%대로 진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었던 2007년 이후 최고수준인 셈이다. 작년 3월 이후 총 9차례에 걸쳐 가파르게 누적된 미국의 금리인상 폭은 4.75%p에 달한다. 그렇지만 4차례 연속 75bp 수준의 자이언트 스텝으로 긴축속도가 정점으로 치닫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25bp 수준의 베이비 스텝 두 차례로 그 강도가 낮아지면서 주식시장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바로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혁신 기업 중심 성장주 성과의 반전이다. 지난주말 기준으로 나스닥 지수는 +15.5%, 성장주 VUG ETF는 +16.3%, 기술주 XLK ETF는 +20.1%,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21.3%의 연초 이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사실 지금 전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공급과잉과 수요감소에 의해 부진을 넘어 혹독한 침체를 겪고 있다. 그래서 역대급 불황이라는 평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나타난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반등이 일견 아이러니해 보인다. 하지만 이유 없는 상승 모멘텀이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다. 반도체 주가 반등을 이끄는 삼박자 스토리 조합이 대기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시간은 반도체를 비롯한 성장주의 편에 서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첫번째 스토리는 반도체 시장에서 하반기 실적 턴어라운드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필수재인 반도체 시장의 업황은 통상적으로 경기 사이클에 동행하며 움직인다. 대규모 시설투자에 의존하는 장치산업의 특성상 반도체의 공급은 매우 경직적이다. 따라서 수요측의 탄력적인 움직임 대비 공급측의 빠른 대응이 어려워 공급과잉과 가격하락의 불황 사이클과 공급부족과 가격상승의 호황 사이클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작년말부터 시작된 업계의 투자축소와 감산정책에 의한 재고조정 효과가 시차를 두고 나타날 올해 하반기는 스마트기기 및 서버 교체주기와도 맞물려 있다. 인텔의 5세대 CPU 출시일정도 예고되어 있어서 반도체 업황 턴어라운드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있다. 향후 1~2개 분기 후의 업황과 실적이 선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진 반도체 주가는 경기 선행지표들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주요국의 최근 반등 움직임도 고무적이다. 지난주 삼성전자의 감산 동참 선언도 반도체 업황의 저점통과 기대에 힘을 더했다.

두번째 스토리는 미국 연준의 긴축 제동이 혁신테크 성장주들의 밸류에이션 개선에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SVB 등 미국 지방은행과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치 은행으로 이어진 시장불안을 통해 가팔랐던 연준의 긴축효과가 예상궤적보다 일찍 확인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Core(근원) PCE(개인소비지출)도 이제 기준금리보다 낮아져 정책 당국자의 긴축목표인 플러스(+) 실질금리 환경도 본격화되었다.

시장은 자연스레 연준의 다음 행보를 자산가격에 투영시키고 있다. 긴축중단과 관망, 완화전환이라는 수순으로 연준 피봇에 대한 기대가 하반기의 화두로 부상할 가능성이 앞당겨졌다. ING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연준의 통화정책에서 마지막 인상부터 첫번째 인하까지의 평균 전환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다. 이는 정책기대를 직접 반영하며 빠르게 움직이는 국채시장의 금리하락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반도체를 비롯해 혁신테크 테마의 성장형 주식들은 밸류에이션 지표의 개선을 통해 금리하락의 수혜를 반영해 갈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 스토리는 ChatGPT의 신드롬으로 보다 강력해진 반도체 산업의 장기성장 동력에 있다. 작년 하반기에 맥킨지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부품인 반도체 시장이 연평균 7% 전후의 장기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 봤다. 특히 컴퓨팅·데이터스토리지, 무선통신, 자동차전자장비 분야를 산업규모와 성장성 측면에서 주목했다.

여기에 작년말 공개된 대화형 AI인 ChatGPT의 열풍이 강력하게 가세했다. ChatGPT는 과거 인터넷(WWW)의 출현에 비견되며 인공지능 시대를 열 특이점으로 세간의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글로벌 테크 기업들에게 ChatGPT 신드롬은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와 함께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 프리시던스 리서치는 AI칩 시장이 2022년 169억달러에서 2032년 2275억달러로 연평균 30%에 가까운 급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AI 시스템은 대량연산이 가능한 고성능 프로세서와 이를 지원하는 고성능 고용량 메모리 조합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반도체 장기 성장전망은 더욱 밝아진 셈이다.

산업을 대표하는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를 살펴보면, 반도체 주가는 2002년 IT버블로 -44.6%의 큰 부진을 겪었지만 2003년에는 +75.7%의 경이적인 반전을 보였고, 2008년 금융위기 때는 -48%의 불황에 빠졌다가 이듬해인 2009년 +69.6%의 성과로 급반등하면서 재고조정 과정을 통한 사이클의 탄력성을 확인시켜 줬다. 작년 한해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35.8%로 또 한번의 역대급 부진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필연적이듯 설비투자 축소와 감산 속 재고조정이라는 반등 스토리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올해 연초 이후 불과 3개월여만에 +20%를 넘어서는 성과를 보이고 있는 반도체 주가에 대해 단기급등에 따른 조정 우려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반기로 예상되는 실적 턴어라운드와 연준 피봇 기대가 견인할 밸류에이션 지표 개선 그리고 ChatGPT 신드롬이 가세한 장기 성장모멘텀의 삼박자 조합이 만들어내는 더 탄탄해진 스토리가 반도체 주가의 추가 상승잠재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반도체 주가의 봄 기운에는 이유가 있다.

*동 의견은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 소속 회사(KB증권)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