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도 '신토불이'…알아들을 수 있는 가사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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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황수미의 노래의 날개 위에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한낮의 따뜻한 햇살과 함께 완연해진 봄기운에 나도 모르게 ‘봄이 오면’(김동환 작사, 김동진 작곡)을 흥얼거립니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성악 공부를 처음 시작한 중학생 시절, 당시 레슨 선생님께서는 이태리 가곡과 함께 한국 가곡을 함께 공부하게 하셨죠. 그 덕분에 참 많은 한국 가곡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서양 클래식에서 말하는 예술가곡의 의미는 시를 비롯한 문학 작품을 바탕으로 작곡한 것입니다. 오페라나 오라토리오와 같이 하나의 성악곡 장르로서 유럽에서는 자주 연주되고 사랑받는 연주 형태입니다.
특히 독일 작곡가 슈베르트를 통해 독일 가곡의 예술성이 인정받게 되었고, 뒤이어 슈만과 브람스, 말러 등의 작곡가들이 독일 가곡의 전통을 이어가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한국 가곡 역시 역사가 깊은데, 1920년 홍난파의 ‘봉선화’가 최초의 한국 가곡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후 시대적 배경을 담은 수많은 한국 가곡이 작곡되고 불려졌습니다.
특히 1980년대에는 한국 가곡의 인기가 엄청나 'MBC 대학 가곡제' 등을 통해 한국 가곡을 들을 기회가 매우 많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대중가요 수준이 발전하면서 조금씩 한국 가곡의 인기가 시들해졌습니다. 성악 공부의 대학 수업 커리큘럼도 덩달아 이태리 가곡, 독일 가곡 등 외국어에 치중한 수업이 많아지며 한국 가곡은 ‘따분한 옛날 음악’처럼 찬밥 신세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전부터 다시 한국 가곡의 새 바람이 불고 있어…
단순한 반주와 어려운 옛말로 적힌 가사가 아닌, 언젠가 한 번 들어본 것 같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쉬운 가사의 여러 신작 가곡들이 요즘들어 많이 탄생하고 있습니다.종종 창법에서부터 가곡과 가요의 경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 가곡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들에게 불려지고 사랑받고 있으니 고무적이라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함께 작업을 해온 가곡 반주의 거장 헬무트 도이치 선생님께서는 이따금씩 제게 가사 표현의 섬세함이 뛰어나다고 하시며, 어떻게 ‘너의 언어’가 아닌 곡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시곤 했는데요. 가사가 있는 곡을 연주해야 하는 성악가들에게 딕션의 정확성과 가사 전달력은 당연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오페라와 같이 정해진 스토리 안에서 맡은 캐릭터를 어떻게 자신만의 색으로 승화하느냐가 아니라, 가곡은 좀 더 세밀한 가는 붓으로 시의 구석구석을 덧입히고 반주와 하나가 돼 불러야 진짜 빛이 나는 음악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가사와 언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겠죠. 시가 품고 있는 내용과 단어 하나하나에서 오는 본인만의 해석으로 연주자에 따라 다른 분위기의 곡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외국 가곡을 부를 땐 수 천번, 수 만번 불러 발음을 익히고 가사가 온전히 머리로 이해된 뒤에야 가슴에 안착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한국 가곡을 부를 때면 머리에서 굳이 필터링을 하지 않아도 단번에 음악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가곡 독창회를 열 때면, 조금은 거창하지만 나 역시 한국을 알리는 문화사절단이라는 생각으로 앵콜곡으로 한국 가곡을 한 곡씩 부릅니다. 그 순간은 이상하리만큼 마음의 고백을 하는 것처럼 편안해집니다.
지난 여름 멘델스존, 코른골트의 프로그램으로 한국에서 리사이틀을 열었습니다. 90분의 모든 프로그램이 막을 내리고 관객들의 귀를 쉬게 하는 의미로 요즘 많이 불려지는 윤학준의 ‘마중’을 앵콜로 불렀습니다.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중략)
사는게 무언지 하무뭇하니 그리워지는 날에는,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입술 끝으로 터지는 가사 하나하나가 저의 고백이었고 듣는 분들은 눈물로 화답했습니다.
우리말과 음악이 만나 울리는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서른 중반이 지나 깨닫고 있습니다.
클래식 성악이 서양의 벨칸토 발성을 바탕으로 공부하게 되고 이태리, 독일어, 프랑스어 등의 음악이 우선이라 생각해 그동안 한국 가곡에는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았던 것을 반성합니다.
나의 음악의 뿌리는 한국이고, 한국어로 된 음악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올해도 여러 공연장에서 독창회를 갖고 있는데, 많은 공연장이 한국 가곡 프로그램을 꼭 넣어달라고 요청을 해와 한국 가곡을 본 프로그램으로 부를 예정입니다.
다른 어떤 언어보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잘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마음과 마음으로 듣는 시간이 되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