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영화들이 있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그저 여러 명작들 중 하나였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유사한 주제의 영화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작품이 되어 두고두고 회자되는 영화.

동시대 감독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중요한 레퍼런스로 은근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영화.

명저들의 문구처럼 문화콘텐츠에 끊임없이 인용됨으로써 영화를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람들도 다 아는 것처럼 친숙해지는 영화. ‘시네마 천국’(쥬세페 토르나토레, 1988)이 바로 그런 영화다.
그간 많은 감독들이 자신을 영화에 입문하게 했던 추억의 영화와 자신의 유년시절 향수를 엮은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영화사의 어느 중요한 시점을 고찰하거나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위대함에 찬사를 보낸 감독들까지 더하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명단에는 장 뤽 고다르(영화의 역사), 마틴 스콜세지(휴고), 장이머우(원세컨드)와 같은 거장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라라랜드’(2016)의 데이미언 셔젤도 ‘바빌론’(2022)으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또한 자전적 이야기이자 영화에 대한 헌사라 할 수 있는 ‘파벨만스’(2022)로 오랜만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네마 천국’이 35년 동안 가장 먼저 거론되는 데는 이유

‘시네마 천국’은 유년시절의 향수, 영화에 대한 애정, 영화사의 흐름 등을 황금비율로 조제해 균형을 잡는데 성공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관객들이 그 시절 극장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영화다.
'시네마 천국', 이만큼 향수를 돋우는 영화는 없다
사실 대다수 감독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자신의 영화사랑을 과도하게 드러내며 관객들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려 했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으로만 접근하다보니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그중에는 완성도가 높고 의미있는 작품들도 있으나 ‘시네마 천국’만큼 진한 향수를 돋우는 데는 대부분 실패했다.

‘시네마 천국’은 다른 영화들이 놓치고 있는 바로 그 지점들에 조심스럽게 접근한 작품이다.

주인공 살바토레는 어릴 때부터 영사기사인 알프레도와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쌓으며 성장한다. 아버지의 부재까지 메워주고 있는 알프레도에게 살바토레는 영사기술 뿐 아니라 영화에 목마른 관객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광장 쪽으로 영사기를 비추는 배려심과 따스함까지 배워나가고 그의 일을 물려받는다.
'시네마 천국', 이만큼 향수를 돋우는 영화는 없다
살바토레는 고향을 떠났다가 30년 후 유명한 감독이 되어 돌아오지만 그의 성공 스토리는 일체 나오지 않는다. 쥬세페 토르나토르 감독이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자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살바토레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었던 시절, 대부분의 동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즐겨보았던 순수한 관객의 위치부터 점한다.

‘시네마 천국’이 반복적으로 응시하는 것은 다양한 관객들의 반응과 표정이다. 이들은 메인 플롯과 상관 없이 영화관을 가득 채우고 그 시절의 극장 풍경을 재현한다.
'시네마 천국', 이만큼 향수를 돋우는 영화는 없다
조는 사람도 있고, 침을 뱉는 사람도 있고, 관음의 쾌락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시쳇말로 스포일러를 뿌려대는 사람도 있지만, 극장은 남녀노소가 모이는 평등한 문화공간이자 유사한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커뮤니티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공간으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은 기술 및 자본의 발달이 극장과 영화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자연스럽게 체험한다.

이것은 유성영화의 탄생, 네온사인이 붙은 영화관, 키스신이 살아있는 영화와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에 울고 웃으면서 나름의 영화사를 기억 속에 새기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시네마 천국’의 미덕을 이야기하면서 1980년대 상업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세련된 스타일이나 절제된 영상을 채워주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아련한 음악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섭섭함을 넘어 분노를 표출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네마 천국’을 명작으로 만든 요인에는 영화와 시대의 변화에 대한 윗세대의 집단적 기억과 정서를 관객들과 효과적으로 공유해낸 부분도 있다고 믿는다.

멀티플렉스의 도입, 비디오 시장의 몰락, 디지털 영화와 OTT 시대의 도래를 목도한 우리들도 ‘시네마 천국’ 속 관객들처럼 한 시대의 영화사를 각자 써내려 가는 중일 것이다.

영화에 대한 우리 세대의 기록들이 담긴 새로운 ‘시네마 천국’도 언젠가 볼 날이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