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우리는 세번의 ‘시작’을 만나게 된다.

1월 1일, 설날, 그리고 봄.

따뜻한 햇살과 살랑살랑 부는 바람, 그리고 이름 모를 봄 향기는 뭐든 시작해보라고 격하게 등을 떠민다. 못 이기는 척 뭔가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요동친다면 지금 당장 가까운 서점을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책장을 넘기는 것 만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구경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는 늘 우리의 선택을 망설이게 한다.

지금의 내 상황과 고민을 듣고 꼭 맞는 책을 누군가가 추천해준다면? 그를 만나볼 의향이 있는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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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작가의 <위험한 독서>의 주인공은 요즘 읽을만한 책이 뭐가 있는지 묻는 이들에게 돈을 내고 물으라고 이야기하는 독서치료사다. 자신의 일은 치료 효과로 치면 부작용이 거의 없고, 중독은 오히려 환영할만한 분야라고 말하는 독서치료사는 7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찾아온 의뢰인을 만난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의뢰인은 30세의 평범한 직장인으로 제빵기술자를 꿈꾼다. 독서치료사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추천한다. 치료가 거듭되면서 그녀는 책 속의 인물에 비추어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고, 동시에 치료사는 그녀의 변화되는 일상을 통해 그녀가 쓰고 있는 삶의 자서전을 읽어 나간다.

<위험한 독서>에는 다양한 경우의 수에 꼭 맞는 추천 도서가 별책부록처럼 소개되어 있는 만큼 '내게 꼭 필요한 책이네' 싶은 책은 기억해두자. '위험한 독서'는 김경욱의 소설집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이다.

이 책에는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르며 오로지 글을 쓰기 위해 귀농한 이의 글쓰기 이야기인 <천년여왕>, 남다른 암기력으로 대학생이 되었지만 간첩 누명을 쓴 광수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의 규칙> 등 언어와 글쓰기, 그리고 책읽기라는 소재가 한권의 책을 관통한다.

그나저나 7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질 수 있을지 묻는 의뢰인에게 독서치료사가 추천한 책은 무엇일까? 책 속에서 직접 확인해보기 바란다.

책의 매력에 푹 빠져 직접 책에 대한 소설을 쓴 작가의 작품도 흥미롭다.

오수완 작가의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는 한의사인 작가가 약 4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내용도 흥미진진하지만 작가의 어마어마한 독서량에 감탄하게 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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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책방지기이자 사라진 책을 쫓아다니는 책사냥꾼 주인공 ‘반디’는 어느 날 책 사냥꾼들의 비밀 조직인 미도당으로부터 완전무결한 책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고, 같은 책을 찾고 있는 ‘검은별’과의 대결을 하면서 전설로 내려오는 단 한권의 완전한 책인 ‘세계의 책’에 다가간다. 소설 특유의 허구와 상상이 바탕이 되었지만 작가의 엄청난 독서량은 이러한 허구마저 사실처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는 책에 대한 소설을 쓰는 숭고한 경지(?)는 꿈도 못꾸지만,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책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상은 영화 ‘토이 스토리’를 떠올리게 한다. 살아 있는 책.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내 책장에서 책들이 깨어나 난상토론을 벌이는 장면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아름다운 이야기의 소설만 있는 건 아니기에…

살아 있는 책들의 이야기도 있다. ‘부흐하임’. 꿈꾸는 책들의 도시. 주인공인 나 ‘힐데쿤스트 폰 미텐메츠(무려 공룡족이다)’는 누구나 시인으로 태어나는 린트부름 요새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칭송받는 원고를 쓴 작가를 찾아 꿈꾸는 책들의 도시인 ‘부흐하임’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최고의 필적전문가라는 ‘피스토메펠 스마이크’를 소개받는다. 원고를 본 스마이크는 나를 가김문의 지하 도서관으로 안내하고 그 곳에서 주인공은 엄청난 모험을 하게 된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라고 하지만 그 지하세계는 비밀, 살인, 음모가 난무하며 한번 발을 들이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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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 발터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을 때는 커다란 종이와 연필을 준비하길 바란다. 스스로 미로 속에 들어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이렇게나 치밀한 책의 세계라니… 인간 세계를 떠나 책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