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도 몰랐던 작가들 한가득…베를린 비엔날레는 '실험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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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변현주의 Why Berlin - 비엔날레의 새로운 물결
펑크 머리 청년, 연주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중년의 여인, 뛰어노는 아이들, 길거리 퍼포먼스를 하는 아티스트, 킥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수트 차림의 남성, 7인승 원형 자전거를 탄 관광객들, 웨딩사진을 찍는 커플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서 촬영된 이 영상은 ‘한편 베를린에서는(Meanwhile in Berlin)’이란 제목으로 레딧(Reddit)에 업로드되어 화제였다. 각양각색의 개성 넘치는 아바타들이 있는 메타버스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한 공간에 있을 것이라 상상하기 힘든 사람들이 함께 있는 영상. 웃음을 터뜨리며 답을 했다.
“베를린은 이런 곳인가요?”
몇 개월 전 한국에 있는 지인이 짧은 영상 링크를 메시지로 보내며 물었다.
“바로 이곳이 베를린이에요.”
독일 분단 시대에 서로 다른 이념의 서독과 동독이 장벽을 경계로 두고 공존했던 도시. 수도이지만, 독일인조차 전형적인 독일 도시가 아니라고 말하는 도시. 170여 개의 박물관이 있는 역사를 기억하는 도시. 독일 정치인 중 최초로 동성애자임을 고백했던 클라우스 보베라이트(Klaus Wowereit)가 14년 동안 시장으로 재직했던 도시.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Berlin ist arm, aber sexy)’. 독일 16개 주 중 최초로 ‘세계 여성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도시. 그리고 영상 속 풍경처럼 다채로운 모습을 열린 태도로 포용하는 도시.
이처럼 단편적으로 알려진 특징도 다양하기에 베를린에는 전 세계의 수많은 아티스트가 모여들어 작업하고 있고, 동시대 미술 중심지 중 하나가 된 것이 아닐까. 나 역시 어깨 힘을 뺀 자연스러움, 과시하거나 젠체하지 않고 예술을 수행하는 이들이 있는 베를린의 매력에 이끌려 와서 거주하며 일하고 있지만, 내가 아는 베를린도 다양한 꺼풀의 일부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동시대 미술 맥락에서 베를린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일까. 왜 다른 곳이 아닌 베를린에서 가능한 걸까. 왜 베를린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이 같은 질문을 던지며 큐레이터로서 내가 발견한, 발견해 나갈 여러 모습의 베를린 미술 현장을 알리려 이 글을 시작한다.
그 첫 번째로 베를린의 특징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미술 이벤트로 베를린 비엔날레를 소개하려 한다. 1998년 시작된 베를린 비엔날레는 20년 넘게 지속하고 있 주요 비엔날레 중 하나이다. 지난해까지 열두 차례 열렸다. Forensic Architecture’s Cloud Studies (2022) at the 12th Berlin Biennale. Photo by Hyunjoo Byeon.
베를린 비엔날레가 수많은 국제 비엔날레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완성도 높은 동시대 미술 이벤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를린 비엔날레는 자본과 미술시장의 영향력에 저항할 수 있는 미술계의 ‘실험실(art lab)’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베를린과도 닮았다.
베를린 비엔날레가 타 비엔날레와 차별화된 점은 젊은 아티스트가 주축이라는 점, 기존 주류인 서구와 비서구 간 활발한 교류를 도모하고 비서구계 예술을 적극적으로 선보인다는 점, 예술의 실험실로서 급진적 시도를 하고 비판적 정치성이 드러나는 주제를 내세운다는 점이다.
1995년 젊은 작가의 작품 전시를 위한 공간이었던 베니스 비엔날레의 ‘열린’ 섹션 아페르토(Aperto)[1]가 해체된 게 계기였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베를린 KW 현대미술관(Kunst-Werke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설립자인 큐레이터 클라우스 비젠바흐(Klaus Biesenbach)가 이 공간을 베를린으로 옮겨 오려 베를린 비엔날레를 출범시켰다. 비젠바흐는 현재 베를린 노이에 내셔널 갤러리(Neue Nationalgalerie, 신 국립미술관)의 관장이기도 하다. 베를린 비엔날레는 첫 회부터 젊은 아티스트를 대거 선보였다. 실제로 제1회부터 2016년 열린 제9회까지 베를린 비엔날레에 참여한 500여 명의 아티스트 중 65%가 30~40대였다.[2] 베를린 비엔날레는 유럽의 중심에서 열리지만, 서구 중심의 예술 경향을 탈피하며 아프리카·중동·아시아·극동아시아·남미 등지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를 선보이는 탈중심화된 이벤트이다. 제1회부터 제9회까지 참여한 아티스트 500여 명 중 비서구계 예술가 비중은 32%를 점했다. 서구 아티스트 중 유럽계는 80%, 북미 출신은 20%로 비서구 출신이 북미계 아티스트보다 훨씬 많았다.[3]
나도 오랜 시간 미술계에 종사하며 많은 아티스트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베를린 비엔날레를 볼 때마다 처음 접하는 아티스트가 상당수에 달해 당황하고 놀란다. 열린 실험실로서 베를린 비엔날레는 동시대 지구촌 사회의 문제를 다루며 저항의 공간을 확보하고 예술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지난해 열린 제 12회 비엔날레는 알제리계 프랑스 작가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를 예술감독으로 초대해 ‘아직 현재!(Still Present!)’라는 제목 아래 탈식민화 방안을 모색했다. 흔히 지난 세기의 것이라 여겨지지만 여전히 지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가부장 사회 등 거대 이데올로기를 조명했다. 이처럼 베를린 비엔날레는 마주 대하기 불편한 주제를 소환하고 우리로 하여금 ‘현존’할 것을 촉구했다.이처럼 내가 본 베를린은 거칠지만 자유롭고, 다양성에 대해서도 관대한 곳이다. 베를린이란 도시와 꼭 닮은 베를린 비엔날레는 번드르르한 아름다움을 제시하기보다 세대와 출신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성찰하며 동시대 미술계의 자본과 시장에 저항하는 보루로서 역할한다. 예술로 동시대를 사유하고 자각해야 함을 일깨우면서. Lawrence Abu Hamdan’s Air Conditioning (2022) at the 12th Berlin Biennale. Photo by Hyunjoo Byeon.
[1] 아페르토는 이태리어로 ‘열린'을 의미한다.
[2] 김은지. (2017). “베를린 비엔날레: 서구와 비서구 경계의 와해.” 미술이론과 현장. 23호. 74-75.
[3] 김은지. (2017). “베를린 비엔날레: 서구와 비서구 경계의 와해.” 미술이론과 현장. 23호.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