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티는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 아니다…그는 다른 곳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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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허남웅의 씨네마틱 유로버스 - 영화 '윌로씨의 휴가'
자크 타티는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린 감독 겸 배우였다. 떠돌이 분장을 하고 온갖 재미난 소동을 일으켰던 찰리 채플린처럼 자크 타티는 ‘윌로’ 캐릭터를 만들어 일상에 슬랩스틱이라는 웃음을 선사했다.
윌로 캐릭터가 처음 나온 작품은 자크 타티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윌로씨의 휴가 Mr. Hulot's Holiday>(1953)이다. 자크 타티 본인이 연기한 윌로는 이 작품에서 겉보기엔 뭐 하나 부족한 거 없어 보이는 중산층 신사다.
베이지색을 콘셉트로 한 세미 정장을 차려입고, 파나마모자에, 파이프까지 입에 문 윌로는 누구라도 먼저 말을 걸어보고픈 호감형이다.
근데 행동거지가 좀 이상하다. 무릎을 쫙 펴고 걷는 어색한 걸음새 하며, 왜 가지고 다니는지 모르겠는 민물 뜰채로 주변에 일으키는 소동 하며, 그 자신이 소란의 원인인데 그걸 알지 못하는 무관심하며, 윌로가 머물거나 지나간 자리에는 영락없이 흔적이 남는다.
부제를 달자면, ‘휴가지에서 벌어진 일’이 더 없이 어울리는 <윌로씨의 휴가>에서 윌로는 혼자 자동차를 몰고 어느 해변을 찾는다. 우아하고 조용하게 휴가를 즐길 거라는 추측이 무색하게 윌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행동으로 주변 분위기를 급변하게 한다.
호텔 로비에서 투숙객들이 조용한 음악을 듣거나 신문을 읽는 등 소일거리 하는 중에 문을 닫지 않고 들어온 윌로로 인해 강한 바람이 들어와 신문이 날리고 음악이 들리지 않는 등 쑥대밭이 된다.
그럼에도 윌로의 행동이 밉지 않은 건 소동의 배경이 대다수에게 익숙한 ‘일상’을 바탕으로 해서다.
일이다 뭐다 해서 일상에 치이기만 했던 사람들은 이제나저제나 휴가를 고대하며 산다. 계획을 잔뜩 세워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휴가를 기대한다.
하지만 동행과 의견이 맞지 않아, 한적하게 보내려 한 휴가지에 사람들이 넘쳐나, 힐링은커녕 파김치가 되거나 기분을 잡치는 등 휴가의 실재적인 효용은 이상(理想)과 괴리가 큰 경우가 종종 있다.
자크 타티는 휴가가 지닌 아이러니의 가치를 소재로 윌로에게 슬랩스틱을 구사하게 하여 웃음을 선사한다.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리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다.
<황금광 시대>(1925)에서 극 중 찰리 채플린은 금광을 찾아 한몫 잡아보려다 추운 오두막에 갇힌다.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신발 뒷축을 스테이크로, 신발 끈을 파스타로 착각해 먹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하층 계급의 곤궁함이 자아낸 비극적 상황이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계급 의식을 이야기의 주요한 동력으로 삼는 찰리 채플린과 다르게 자크 타티는 날로 고도화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 전과 달라진 시스템과 분위기로 일상에 어떤 소동이 벌어지는지 주목한다.
변한 사회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그러니까,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으면서 그에 어울리지 않는 그물 뜰채를 든 외양의 윌로는 ‘시대가 변하거나 말거나 나는 내 길을 가련다’는 태도로 인해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소동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혼란한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리듬을 잃지 않고 여유로운 자세로 현실에 충실한 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삶은 속도가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웃음으로 알려준다.
그래서 <윌로씨의 휴가> 이후로 윌로가 등장한 <나의 아저씨> (1958) <플레이 타임>(1967)은 말보다 행동으로, 대사보다 이미지로, 자극적인 묘사보다 정서로 무장한 미쟝센의 결과로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과는 다른 개성을 획득한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자크 타티 회고전’(3.1~3.26)이 한창이다.
자크 타티가 감독이자 배우로 얼굴을 알린 <축제일>(1947)부터 이 지면에서 다룬 <윌로씨의 휴가>, 그리고 경력 후반기를 장식한 <트래픽>(1971)과 <퍼레이드>(1973) 등 6편의 장편과 더불어 4편의 단편영화까지 감독 자크 타티의 모든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지적인 영화만 만들 것 같은 프랑스에도 코미디의 전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를!
베이지색을 콘셉트로 한 세미 정장을 차려입고, 파나마모자에, 파이프까지 입에 문 윌로는 누구라도 먼저 말을 걸어보고픈 호감형이다.
근데 행동거지가 좀 이상하다. 무릎을 쫙 펴고 걷는 어색한 걸음새 하며, 왜 가지고 다니는지 모르겠는 민물 뜰채로 주변에 일으키는 소동 하며, 그 자신이 소란의 원인인데 그걸 알지 못하는 무관심하며, 윌로가 머물거나 지나간 자리에는 영락없이 흔적이 남는다.
부제를 달자면, ‘휴가지에서 벌어진 일’이 더 없이 어울리는 <윌로씨의 휴가>에서 윌로는 혼자 자동차를 몰고 어느 해변을 찾는다. 우아하고 조용하게 휴가를 즐길 거라는 추측이 무색하게 윌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행동으로 주변 분위기를 급변하게 한다.
호텔 로비에서 투숙객들이 조용한 음악을 듣거나 신문을 읽는 등 소일거리 하는 중에 문을 닫지 않고 들어온 윌로로 인해 강한 바람이 들어와 신문이 날리고 음악이 들리지 않는 등 쑥대밭이 된다.
그럼에도 윌로의 행동이 밉지 않은 건 소동의 배경이 대다수에게 익숙한 ‘일상’을 바탕으로 해서다.
일이다 뭐다 해서 일상에 치이기만 했던 사람들은 이제나저제나 휴가를 고대하며 산다. 계획을 잔뜩 세워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휴가를 기대한다.
하지만 동행과 의견이 맞지 않아, 한적하게 보내려 한 휴가지에 사람들이 넘쳐나, 힐링은커녕 파김치가 되거나 기분을 잡치는 등 휴가의 실재적인 효용은 이상(理想)과 괴리가 큰 경우가 종종 있다.
자크 타티는 휴가가 지닌 아이러니의 가치를 소재로 윌로에게 슬랩스틱을 구사하게 하여 웃음을 선사한다.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으로 불리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다.
<황금광 시대>(1925)에서 극 중 찰리 채플린은 금광을 찾아 한몫 잡아보려다 추운 오두막에 갇힌다.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신발 뒷축을 스테이크로, 신발 끈을 파스타로 착각해 먹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하층 계급의 곤궁함이 자아낸 비극적 상황이 짠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계급 의식을 이야기의 주요한 동력으로 삼는 찰리 채플린과 다르게 자크 타티는 날로 고도화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 전과 달라진 시스템과 분위기로 일상에 어떤 소동이 벌어지는지 주목한다.
변한 사회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그러니까,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으면서 그에 어울리지 않는 그물 뜰채를 든 외양의 윌로는 ‘시대가 변하거나 말거나 나는 내 길을 가련다’는 태도로 인해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소동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혼란한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리듬을 잃지 않고 여유로운 자세로 현실에 충실한 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삶은 속도가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웃음으로 알려준다.
그래서 <윌로씨의 휴가> 이후로 윌로가 등장한 <나의 아저씨> (1958) <플레이 타임>(1967)은 말보다 행동으로, 대사보다 이미지로, 자극적인 묘사보다 정서로 무장한 미쟝센의 결과로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과는 다른 개성을 획득한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자크 타티 회고전’(3.1~3.26)이 한창이다.
자크 타티가 감독이자 배우로 얼굴을 알린 <축제일>(1947)부터 이 지면에서 다룬 <윌로씨의 휴가>, 그리고 경력 후반기를 장식한 <트래픽>(1971)과 <퍼레이드>(1973) 등 6편의 장편과 더불어 4편의 단편영화까지 감독 자크 타티의 모든 작품을 즐길 수 있다.
지적인 영화만 만들 것 같은 프랑스에도 코미디의 전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