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무대를 다채롭게 해주는 바흐의 이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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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이동조의 나는 무대감독입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작품번호 244 '마태수난곡'의 무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작품번호 244 '마태수난곡'의 무대
해마다 봄을 맞을 즈음 한 번쯤 연주가 이루어지는 작품 중에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있다. 2023년 올해 역시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3월 2일 김선아 지휘자와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연주로 이 작품이 연주되었다.
음악당 무대감독의 경력을 시작할 즈음 만나게 되었던 이 작품의 무대를 지금까지 경험하며 갖게 된 배움은 음악회의 무대라는 것에 대해 언제나 자유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회에 대한 누군가의 농담처럼 화려한 조명도 없고 다양한 의상도 없으며 무대연출은 극히 제한되어 있고 움직임이라고는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지휘와 연주가 다인 그 심심한 무대.
음악이 그 모든 것들을 충분히 대신하고 있음을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깨달아오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주는 클래식의 큰 무대는 역시 바흐의 작품 마태수난곡이 그 최전선에 서 있다. 청중과 오케스트라가 마주 보고 있는 일반적인 콘서트홀 공간이 아닌 교회의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두 오케스트라와 두 합창단을 사용하고 있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콘서트홀 무대를 반으로 가르고 있는 두 오케스트라와 두 합창단의 모습은 마태수난곡의 무대를 사랑하는 청중이라면 익숙한 모습일 테다.
2004년 3월 16~17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성 토마스 합창단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 청중으로 이 작품의 공연에 처음 참여했다.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로 봉직했던 시기(1723~1750)의 초연 후 100년이 지나 멘델스존의 지휘로 이 작품을 다시 세상에 알렸던 그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첫 공연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일은 지금 다시 돌이켜 봐도 축복이었던 것 같다.
바흐 음악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는 성 토마스 합창단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공연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은 2016년 3월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이었다.
12년의 차이를 두고 발견했던 차이점 하나는 목관악기 중 바순이 쓰이는 용도였다. 현대의 표현으로 쓰자면 첼로, 고음악의 표현으로 하자면 비올라 다 감바라고도 부를 수 있는 저음의 현악기가 통상적으로 반주를 담당하는 이 작품 속 테너의 아리아, ‘인내하라’.
이 연주단체는 2016년 공연에서는 이 아리아의 반주 부분을 오르간도 비올라 다 감바도 아닌 목관악기군의 저음 부분을 담당하는 바순에게 맡겼다. 마치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봄의 제전』을 시작하는 혹은 도니제티의 오페라『사랑의 묘약』 중 그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의 도입을 알리는 그 모습처럼.
바흐가 작곡 활동을 하던 17-18세기에는 악기 디자인의 혁신을 통해 현악기들과 목관악기들 상호 간 동일한 피치 사용이 가능해졌다.
그에 따라 현을 뜯는 악기 혹은 건반 악기만이 주로 담당해 왔던 바로크 음악의 통주저음뿐 아니라 아리아의 반주 역할 역시 목관악기가 대신하는 것 역시 가능해졌고, 꾸준히 한국을 내한하던 이 연주단체는 찰현악기 또는 건반악기의 역할을 목관악기로 바꾼 그 변화 하나로 바흐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부심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2010년 미국 출신의 무대연출가인 피터 셀라스와 마에스트로 사이몬 래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국립 합창단, 베를린 방송 합창단, 돔 합창단 소년들은 빈야드 구조의 콘서트홀 필하모니 베를린에서 이 작품을 연출하고 연주했다.
마치 엄마가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듯한 모습, 무대 중앙의 위치에서 벗어난 지휘자가 수난의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광경, 연극의 배우처럼 무대를 걸어 다니며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악보 없이 표현해내는 성악가와 합창단의 일원들.
무대연출가인 피터 셀라스는 필하모니 베를린의 무대가 이 작품의 무대연출을 창의하는데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고 말을 했고, 이 작품을 무대 위에 가장 입체적으로 표현했던 무대라 기억하고 있다.
지난 세기가 저물던 1999년 3월 국내 대표적인 공연예술월간지인 『객석』에서는 ‘명곡 명반 Museum’이란 와이드 기획 부분에서 이 작품에 대해 다루었다.
칼럼니스트는 이 작품은 세 개의 층을 가지고 있다는 언급을 했다.
첫 번째로 역사적으로 수난 사건이 전개되는 현실의 공간,
두 번째로는 수난 사건에 대한 심리적이며 심정적인 층이며 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이 드라마의 극작가 역할을 했던 피칸더의 자유신앙시와 레치타티보, 아리아이며 마지막으로는 교회에 모인 회중 전체가 부르도록 설계된 코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세 개의 층을 늘 마음에 담고 기억하며 여러 마태수난곡의 무대를 무대감독의 경험을 통해 천천히 쌓아오는 동안, 바흐의 작곡 노트를 상상하며 그려볼 수 있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음악당 무대감독으로 십여 년의 시간을 보낸 뒤 찾았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안장된 독일의 도시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 들어서던 순간은 오랜 시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알고는 있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어떤 정답 같은 것을 보게 된 기쁨이라고나 할까.
독일이 바흐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는 도시 아이제나흐의 바흐하우스 박물관에 재현해 놓은 그의 작업실. 건반 악기와 기보에 필요한 책상이 놓인 그 공간과 더불어 그의 작품 마태수난곡 무대에 관한 오래된 숙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대규모 클래식 콘서트홀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음악들에 익숙해 질도록 익숙해진 자에게 두 오케스트라 두 합창단이 얼마나 신선하게 느껴지는지, 복음사가-레치타티보-아리아-합창의 형식이 순환하는 성악가와 합창단의 표현이 얼마나 독특한 것인지,
성인의 말씀 앞에 성 토마스 교회 안으로 오르간의 한 음을 툭 떨어뜨려 그것이 성인의 말씀에 후광이 되고 있다는 일을 콘서트홀의 거대한 무대로 치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
2500석 규모의 콘서트홀 무대를 가득 채운 오케스트라를 보며 그 오케스트라 무대의 부분 부분을 툭 떼어내 청중 600명 규모의 무대에 맞는 음악회를 예술의전당 음악당 챔버홀에서 꾸미고, 350석 규모에 맞게 축소해 예술의전당 음악당 리사이틀홀로 보내는 것이라고만 늘 정리해 왔다.
교회라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생전에 수천 석의 객석을 지닌 공연장을 보지 못한 일이 오히려 마태수난곡의 무대가 현대의 무대연출가들과 연주자들에게는 창의와 자유의 구석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도 그저 길을 나서면 만날 수 있는 그 평범한 교회의 모습은 혹시 350석 무대의 매력, 600석 무대의 매력, 2,500석 무대의 매력을 모두 지니고 있음을 이제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음악회의 무대를 더욱 복합적이며 입체적으로 표현할 가능성을 여전히 품고 있는 작품이 마태수난곡이라 늘 기억하며 그 자유로움과 독창적인 창의를 잊지 않으며 매일매일 똑같은 아니 매일매일 너무나 다른 그 클래식의 무대들을 오늘도 만나고 있다.
아울러 더욱 근사한 마태수난곡의 무대가 또 누군가의 영감에 의해 태어날 것이란 확신에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없다.
음악당 무대감독의 경력을 시작할 즈음 만나게 되었던 이 작품의 무대를 지금까지 경험하며 갖게 된 배움은 음악회의 무대라는 것에 대해 언제나 자유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회에 대한 누군가의 농담처럼 화려한 조명도 없고 다양한 의상도 없으며 무대연출은 극히 제한되어 있고 움직임이라고는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지휘와 연주가 다인 그 심심한 무대.
음악이 그 모든 것들을 충분히 대신하고 있음을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깨달아오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주는 클래식의 큰 무대는 역시 바흐의 작품 마태수난곡이 그 최전선에 서 있다. 청중과 오케스트라가 마주 보고 있는 일반적인 콘서트홀 공간이 아닌 교회의 구조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두 오케스트라와 두 합창단을 사용하고 있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콘서트홀 무대를 반으로 가르고 있는 두 오케스트라와 두 합창단의 모습은 마태수난곡의 무대를 사랑하는 청중이라면 익숙한 모습일 테다.
2004년 3월 16~17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성 토마스 합창단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 청중으로 이 작품의 공연에 처음 참여했다.
바흐가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로 봉직했던 시기(1723~1750)의 초연 후 100년이 지나 멘델스존의 지휘로 이 작품을 다시 세상에 알렸던 그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첫 공연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일은 지금 다시 돌이켜 봐도 축복이었던 것 같다.
바흐 음악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는 성 토마스 합창단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공연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은 2016년 3월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이었다.
12년의 차이를 두고 발견했던 차이점 하나는 목관악기 중 바순이 쓰이는 용도였다. 현대의 표현으로 쓰자면 첼로, 고음악의 표현으로 하자면 비올라 다 감바라고도 부를 수 있는 저음의 현악기가 통상적으로 반주를 담당하는 이 작품 속 테너의 아리아, ‘인내하라’.
이 연주단체는 2016년 공연에서는 이 아리아의 반주 부분을 오르간도 비올라 다 감바도 아닌 목관악기군의 저음 부분을 담당하는 바순에게 맡겼다. 마치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봄의 제전』을 시작하는 혹은 도니제티의 오페라『사랑의 묘약』 중 그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의 도입을 알리는 그 모습처럼.
바흐가 작곡 활동을 하던 17-18세기에는 악기 디자인의 혁신을 통해 현악기들과 목관악기들 상호 간 동일한 피치 사용이 가능해졌다.
그에 따라 현을 뜯는 악기 혹은 건반 악기만이 주로 담당해 왔던 바로크 음악의 통주저음뿐 아니라 아리아의 반주 역할 역시 목관악기가 대신하는 것 역시 가능해졌고, 꾸준히 한국을 내한하던 이 연주단체는 찰현악기 또는 건반악기의 역할을 목관악기로 바꾼 그 변화 하나로 바흐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부심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2010년 미국 출신의 무대연출가인 피터 셀라스와 마에스트로 사이몬 래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국립 합창단, 베를린 방송 합창단, 돔 합창단 소년들은 빈야드 구조의 콘서트홀 필하모니 베를린에서 이 작품을 연출하고 연주했다.
마치 엄마가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듯한 모습, 무대 중앙의 위치에서 벗어난 지휘자가 수난의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광경, 연극의 배우처럼 무대를 걸어 다니며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악보 없이 표현해내는 성악가와 합창단의 일원들.
무대연출가인 피터 셀라스는 필하모니 베를린의 무대가 이 작품의 무대연출을 창의하는데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고 말을 했고, 이 작품을 무대 위에 가장 입체적으로 표현했던 무대라 기억하고 있다.
지난 세기가 저물던 1999년 3월 국내 대표적인 공연예술월간지인 『객석』에서는 ‘명곡 명반 Museum’이란 와이드 기획 부분에서 이 작품에 대해 다루었다.
칼럼니스트는 이 작품은 세 개의 층을 가지고 있다는 언급을 했다.
첫 번째로 역사적으로 수난 사건이 전개되는 현실의 공간,
두 번째로는 수난 사건에 대한 심리적이며 심정적인 층이며 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이 드라마의 극작가 역할을 했던 피칸더의 자유신앙시와 레치타티보, 아리아이며 마지막으로는 교회에 모인 회중 전체가 부르도록 설계된 코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세 개의 층을 늘 마음에 담고 기억하며 여러 마태수난곡의 무대를 무대감독의 경험을 통해 천천히 쌓아오는 동안, 바흐의 작곡 노트를 상상하며 그려볼 수 있었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러 명의 작가보다 한 명의 작가에게 맡긴 이번 가사가 더욱 좋은 것 같다. 통일성도 느껴지고. 복음사가에게 거의 무반주로 줄거리를 맡기고 보니, 아리아로 넘어갈 때 약간 어색한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각 성부의 독창자들에게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하기 전 서창을 부여해서 자연스러움을 유도해야 할 것 같아.
또 내가 만든 음악들이 아닌 낯익은 기존의 합창들을 요소요소 배치해서 익숙함과 동시에 긴장의 이완을 도모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 직장에서 근무한 지도 5년이 되어가니 2개의 오르간을 지닌 이 공간은 작곡하는 입장에서 축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악 속에 등장하는 몇몇 주요 인물들에 대한 물리적인 위치 역시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을 듯하고. 청중들의 자리를 양분하는 통로를 기준으로 2개의 오케스트라를 배치하는 일과 1층과 2층의 자리들을 이용해 기본적으로 합창을 두 부분으로 나누고 때에 따라 극적으로 음악을 연출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어.”
음악당 무대감독으로 십여 년의 시간을 보낸 뒤 찾았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안장된 독일의 도시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 들어서던 순간은 오랜 시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알고는 있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어떤 정답 같은 것을 보게 된 기쁨이라고나 할까.
독일이 바흐의 탄생을 기념하고 있는 도시 아이제나흐의 바흐하우스 박물관에 재현해 놓은 그의 작업실. 건반 악기와 기보에 필요한 책상이 놓인 그 공간과 더불어 그의 작품 마태수난곡 무대에 관한 오래된 숙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대규모 클래식 콘서트홀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음악들에 익숙해 질도록 익숙해진 자에게 두 오케스트라 두 합창단이 얼마나 신선하게 느껴지는지, 복음사가-레치타티보-아리아-합창의 형식이 순환하는 성악가와 합창단의 표현이 얼마나 독특한 것인지,
성인의 말씀 앞에 성 토마스 교회 안으로 오르간의 한 음을 툭 떨어뜨려 그것이 성인의 말씀에 후광이 되고 있다는 일을 콘서트홀의 거대한 무대로 치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
2500석 규모의 콘서트홀 무대를 가득 채운 오케스트라를 보며 그 오케스트라 무대의 부분 부분을 툭 떼어내 청중 600명 규모의 무대에 맞는 음악회를 예술의전당 음악당 챔버홀에서 꾸미고, 350석 규모에 맞게 축소해 예술의전당 음악당 리사이틀홀로 보내는 것이라고만 늘 정리해 왔다.
교회라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생전에 수천 석의 객석을 지닌 공연장을 보지 못한 일이 오히려 마태수난곡의 무대가 현대의 무대연출가들과 연주자들에게는 창의와 자유의 구석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도 그저 길을 나서면 만날 수 있는 그 평범한 교회의 모습은 혹시 350석 무대의 매력, 600석 무대의 매력, 2,500석 무대의 매력을 모두 지니고 있음을 이제야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음악회의 무대를 더욱 복합적이며 입체적으로 표현할 가능성을 여전히 품고 있는 작품이 마태수난곡이라 늘 기억하며 그 자유로움과 독창적인 창의를 잊지 않으며 매일매일 똑같은 아니 매일매일 너무나 다른 그 클래식의 무대들을 오늘도 만나고 있다.
아울러 더욱 근사한 마태수난곡의 무대가 또 누군가의 영감에 의해 태어날 것이란 확신에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