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은 첫 처방 디지털 치료제(DTX)를 내놓은 페어테라퓨틱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인수자를 물색했음에도 마땅한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페어테라퓨틱스는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챕터11)을 하고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파산보호 신청은 채무이행을 일시 중단한 뒤 자산 매각 등을 통해 기업을 정상화하는 절차다. 국내의 법정관리 신청과 유사한 제도다.

파산보호가 승인되면 새로운 인수자를 물색하면서 기업 활동을 재개할 시간을 벌 수 있다. 페어테라퓨틱스는 전체 임직원의 92%인 170명을 해고해 비용도 최소화했다. 최고경영자(CEO)인 커리 맥칸도 해고 대상에 포함됐다.

페어테라퓨틱스는 2017년 세계 첫 DTX인 물질중독 장애 디지털 치료제 리셋(reSET)을 시장에 내놓으며 주목받았다. 이어 아편유사제중독 장애(OUD) 디지털 치료제인 리셋-O(reSET-O),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 ‘솜리스트’ 등을 시장에 출시하며 ‘디지털 치료제 업계 선구자’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제품의 성장세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여러 후속 치료제의 연구개발(R&D)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 경영 상황이 악화됐다. 국내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사실상 방만한 경영을 했다”며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선택과 집중없이 14개나 되는 후속 제품을 개발하면서 현금을 고갈시켰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페어의 매출은 1267만달러였다. R&D에는 4620만달러를 지출했다. R&D 비용은 2020년 2810만달러, 2021년 3700만달러 등 매년 증가했다. 그 결과, 순손실도 꾸준히 커져 2021년 6510만달러에서 2022년 7550만달러로 늘었다. 버는 것보다 쓰는 돈이 너무 많았다. 지난해 말 기준 페어가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4830만달러였다.

페어는 한 달 간 인수자를 물색했음에도 마땅한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페어는 140곳이 넘는 제약회사 벤처캐피털 사모펀드(PE) 등에 연락을 돌렸으나, 눈높이가 맞는 인수자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내 전문가는 “페어의 자금 상황이 악화되면서 리셋과 리셋-O 등의 제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이 시장에 알려졌다”며 “페어가 가진 디지털 치료제에 업계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유”라고 했다.

미국 디지털 치료제 업체 중 심각한 자금난에 빠진 건 페어만이 아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개선할 수 있는 게임형 디지털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은 아킬리 또한 지난 1월 30% 이상 인원을 감축했다. 이 회사의 매출은 2019년 2000만달러에서 지난해 30만달러로 급감한 상태다.

이를 두고 미국 디지털 치료제 업체들이 너무 이른 시점에 기업공개(IPO)라는 ‘축포’를 터뜨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페어는 2021년 12월, 아킬리는 지난해 8월 스팩 합병을 통해 나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당시 두 곳 모두 적자 상태였으며 흑자전환 시점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는 “디지털 치료제 개발사와 신약개발사는 현금이 움직이는 구조가 전혀 다른데, 두 회사 모두 신약개발사처럼 움직였다”며 “신약개발사는 매출이 몇 년간 없더라도 단 한 번의 기술수출(LO)과 단계별기술료로 몇 년치 현금을 벌어들이지만, 디지털 치료제 개발사는 결국 제품 매출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익분기점(BEP) 달성 시점에 대한 고민 없이 상장 시점만 이르게 가져갔다는 것이다.

이어 “중독장애 환자와 ADHD 아동 모두 스마트 기기를 오래 사용할 수 있는 환자군이 아니다”며 “디지털 치료제를 적용하기에 적절한 대상이 아니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 사이트 <한경 BIO Insight>에 2023년 4월 11일 14시 25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