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친구 심슨 가족이 알려주는 '진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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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기현의 탐나는 책
윌리엄 어윈 외 지음
유나영 옮김
<심슨 가족이 사는 법> (글항아리, 2019)
윌리엄 어윈 외 지음
유나영 옮김
<심슨 가족이 사는 법> (글항아리, 2019)
아빠는 취미가 많다. 아빠는 친구들과의 약속보다는 방에서 선물받은 하모니카를 불거나, 클래식 기타로 새로운 악보를 연주해 보거나, 바둑 대국을 감상할 때 훨씬 행복한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는 날은 1년에 사흘 정도 되려나?
유년 시절의 조각 기억들을 모아 보았을 때 나는 제법 씩씩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은데, 커 가면서 더욱 뚜렷이 발현되는 아빠의 피와, 뜻하지 않게 맞부딪친 이런저런 일들의 효과가 뒤섞여 지금처럼 친구를 만나지 않을 때에 더욱 친구란 무엇일까 생각하는 내가 되었다.
나는 늘 친구에 대해 생각한다. 실물 친구보다는 개념 친구에 대해.
시기별로 이상적인 친구 관계란 무엇일까 생각하게끔 해 주었던 콘텐츠가 있었다. 중학교 때 미드 '오피스', 고등학교 때 영드 '미란다', 대학교 때 예능 '신화방송', 그리고 범시기적으로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회사, 세트장, 스튜디오처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 안에 늘 같은 사람들이 모여 울고 우는 것을 지켜보는 일에는 단순한 즐거움 이상의 든든함이 있었다. 등장인물들을 수 년에 걸쳐 지켜보자면 모두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전능함이 깃든다.
30년이 넘도록 방영 중인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 대해서라면…… 나는 심슨 가족이 사는 마을 스프링필드에 갑작스레 떨어져도 길을 잃지 않을 것 같다. 퀵이마트에서 핵발전소로, 핵발전소에서 바트와 리사의 학교로, 모네 술집으로. 애니메이션의 인물들은 결코 늙지 않으므로, '심슨 가족'은 30년에 걸쳐 나이를 먹고 성장하고 변화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한 시기의 인물이 지닌 얼굴들을 무수히 잘게 쪼개어 펼쳐 놓는 형식을 취한다.
한 인물의 한 시기를 수십 년 동안 들여다보기. 심슨 가족의 막내 메기는 30년째 공갈 젖꼭지를 떼지 못한 영원한 아기이다. 그러나 나는 메기가 사실 스프링필드 전체를 구원한 천재 아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물론 '심슨 가족'이 한 에피소드를 통해 내게 메기가 천재라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메기라는 아기에 대해 30년 동안 생각하다 보면 선물처럼 깨닫게 되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심슨 가족이 사는 법>은 20명의 철학자가 '심슨 가족'으로부터 철학적 의미를 길어 낸 글들을 엮은 책으로, 원서는 '심슨 가족'이 시즌 12까지 진행된 2001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철학자들의 도움으로 서로 30년 동안 관계 맺고 있는, 내 기준에 따르자면 서로 친구 관계가 아닐 수 없는 극중 인물들을 철학과 함께 들여다본다.
가장 반가웠던 글 두 편을 꼽자면 몽고메리 번즈와 네드 플랜더스에 대한 글이다. 몽고메리 번즈는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지역 유지인데,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그를 건물 바닥으로 추락시키거나 사냥개를 풀어 버리는 극악무도한 인간이다. 그와 반대로 네드 플랜더스는 언제나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하며 마을 교회의 목사보다도 철저히 교리를 실천하는 신실한 인간이다.
<심슨 가족이 사는 법>을 읽고 나면 그 둘이 모두 이웃들로부터 고립된 외로운 인간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된다. 몽고메리 번즈가 절대 악으로 이웃들을 내몬다면 네드 플랜더스는 절대 선으로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거나 스스로 지쳐 가며 결국 가족 안에 고립된다. 한 친구의 일면에 대해 수십 년 생각하다 보니 절대 악과 절대 선이 이렇게 만나기도 한다.
<심슨 가족이 사는 법>은 나로 하여금 친구들의 마음을 더욱 깊이 헤아려보게 하는 지도와 같은 책이다. 나 대신,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대신 써 둔 정답지와도 같은 책이다.
나는 늘 친구에 대해 생각한다. 실물 친구보다는 개념 친구에 대해.
시기별로 이상적인 친구 관계란 무엇일까 생각하게끔 해 주었던 콘텐츠가 있었다. 중학교 때 미드 '오피스', 고등학교 때 영드 '미란다', 대학교 때 예능 '신화방송', 그리고 범시기적으로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회사, 세트장, 스튜디오처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 안에 늘 같은 사람들이 모여 울고 우는 것을 지켜보는 일에는 단순한 즐거움 이상의 든든함이 있었다. 등장인물들을 수 년에 걸쳐 지켜보자면 모두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전능함이 깃든다.
30년이 넘도록 방영 중인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 대해서라면…… 나는 심슨 가족이 사는 마을 스프링필드에 갑작스레 떨어져도 길을 잃지 않을 것 같다. 퀵이마트에서 핵발전소로, 핵발전소에서 바트와 리사의 학교로, 모네 술집으로. 애니메이션의 인물들은 결코 늙지 않으므로, '심슨 가족'은 30년에 걸쳐 나이를 먹고 성장하고 변화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한 시기의 인물이 지닌 얼굴들을 무수히 잘게 쪼개어 펼쳐 놓는 형식을 취한다.
한 인물의 한 시기를 수십 년 동안 들여다보기. 심슨 가족의 막내 메기는 30년째 공갈 젖꼭지를 떼지 못한 영원한 아기이다. 그러나 나는 메기가 사실 스프링필드 전체를 구원한 천재 아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물론 '심슨 가족'이 한 에피소드를 통해 내게 메기가 천재라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메기라는 아기에 대해 30년 동안 생각하다 보면 선물처럼 깨닫게 되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심슨 가족이 사는 법>은 20명의 철학자가 '심슨 가족'으로부터 철학적 의미를 길어 낸 글들을 엮은 책으로, 원서는 '심슨 가족'이 시즌 12까지 진행된 2001년에 출간되었다. 나는 철학자들의 도움으로 서로 30년 동안 관계 맺고 있는, 내 기준에 따르자면 서로 친구 관계가 아닐 수 없는 극중 인물들을 철학과 함께 들여다본다.
가장 반가웠던 글 두 편을 꼽자면 몽고메리 번즈와 네드 플랜더스에 대한 글이다. 몽고메리 번즈는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지역 유지인데,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그를 건물 바닥으로 추락시키거나 사냥개를 풀어 버리는 극악무도한 인간이다. 그와 반대로 네드 플랜더스는 언제나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하며 마을 교회의 목사보다도 철저히 교리를 실천하는 신실한 인간이다.
<심슨 가족이 사는 법>을 읽고 나면 그 둘이 모두 이웃들로부터 고립된 외로운 인간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된다. 몽고메리 번즈가 절대 악으로 이웃들을 내몬다면 네드 플랜더스는 절대 선으로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거나 스스로 지쳐 가며 결국 가족 안에 고립된다. 한 친구의 일면에 대해 수십 년 생각하다 보니 절대 악과 절대 선이 이렇게 만나기도 한다.
<심슨 가족이 사는 법>은 나로 하여금 친구들의 마음을 더욱 깊이 헤아려보게 하는 지도와 같은 책이다. 나 대신,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대신 써 둔 정답지와도 같은 책이다.
현실에서도 이런 지도가 주어진다면 참 좋을 텐데. 책상에 앉아 지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내 친구들의 마음을 바닥까지 알게 될 텐데. 복사를 한 장 떠 아빠에게도 건네줄 수 있을 텐데. 아빠가 이런저런 것들을 그저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멈추어 버리지는 않을 텐데.그러나 나 대신 <정 씨 일가가 사는 법> 지도를 써 줄 20명의 철학자를 구하는 일부터 문제겠지. 아빠 역시 그 일부터 막혀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악기와 함께하는 주말도 그런대로 재미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