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의 그림자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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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강영특의 탐나는 책
트리스탄 굴리 지음
김지원 옮김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이케이북, 2017)
트리스탄 굴리 지음
김지원 옮김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이케이북, 2017)
야외로 나가기 좋은 계절이니 이 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목이 매력적이고 표지도 근사해 출간 당시 눈여겨보았던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원제: The Walker’s Guide to Outdoor Clues and Signs). 땅의 형태와 특징부터 나무와 풀과 꽃, 이끼와 버섯, 암석, 바람과 구름과 무지개, 별, 해, 달, 동물들, 눈과 모래에 이르기까지, 부제 그대로 ‘우리 주변에 널린 자연의 신호와 단서를 알아보는 법’을 담은 책이다. 영국인 저자 트리스탄 굴리는 펜대만 굴리는 사람과는 좀 다른 현장형 지식인이랄까, 자연을 이용해 길을 찾는 ‘자연 내비게이션’ 전문가이다. 그는 ‘주변의 모든 풍경을 아우르는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데 정통하다.
인도네시아의 3726m 높이 활화산을 오르다 혼쭐이 난 열아홉 살 이후로도, 작은 보트를 타고 영국에서 북아프리카까지 항해하는가 하면, 투아레그 유목민과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기도 했고, 단발비행기를 타고 북대서양 단독 비행에 성공하고 홀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기도 했으니 모험가로서도 손색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홀로 산길을 걷다가 꼼짝 않고 멈춰 서서 ‘나무에서 응축된 안개가 마른 너도밤나무 이파리 더미 위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오롯이 주의를 기울여 주변 환경을 관찰하는 것, 이 책의 근본정신이기도 하다. 자연이 그런 모양,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걸 찾아보자는 것이다.
책에선 자연의 신호들을 발견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추론해내는 다양한 방법이 제시된다. 읽다 보면 셜록 홈스가 따로 없구나 싶다. 상식적인 것에서부터, 난이도가 높은 것까지 두루 망라한다.
가령 앞사람의 등짝에 붙은 파리의 수는 사람 혹은 대형 동물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보여주는 징조라는 것(당연해 보인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기온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기 때문에 온도계 대용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사전지식이 필요하다), 발치에 있는 풀의 형태를 보고 ‘오늘 분 북서풍이 풀줄기의 제일 위쪽을 기울여 놓았지만, 아래쪽이 비틀린 것으로 보아 지난 며칠 동안은 북동풍이 불었다’는 걸 알아채기도 한다(이런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사 같은지고!). 이런 사람이 가이드를 해준다면 어찌 든든하지 않을까.
책을 읽고 나면 나침반을 참조하지 않고도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음은 물론, 북두칠성의 위치를 보고 현재 시각을 알 수 있게 된다(별시계). ‘런던에서 뜬 해가 에든버러에서 뜬 해보다 항상 손가락 관절 두 개만큼 더 높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같은 날 바닷가에서 일몰을 두 차례 보는 법도 알게 된다(누워서 지켜보다가 첫 번째 일몰이 끌날 즈음 일어서서 다시 해지는 것을 구경한다). 보름달은 반달보다 두 배가 아니라 열 배쯤 밝다는 것을, 희고 밝은 초승달이 뜬 날, 달의 어두운 부분도 희미하게 보인다면 이건 지구에서 반사된 빛 때문임을 알게 된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듯 언급되는 바, 금성의 그림자를 정말 볼 수 있을지, ‘진창에 반사된 목성의 빛이 시야에 불쑥 들어왔다’는데,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독서의 부작용이 조금 염려되기는 한다. 심심함을 즐기기 위해 한가로이 산책에 나섰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아 오감이 너무 활발히 가동되고, 마음도 바빠질지 모른다. 그만큼 경험은 풍요로워지겠지만, 산책이 너무 길어질 수 있다. 들고 나간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돌아오게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주위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독서의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익숙한 길을 낯설게 바꿔놓는 근사한 경험"에 대한 바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달빛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본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보름달 뜬 맑은 날에 꼭 확인해보리라 마음먹는다. 주말의 어느 깊은 밤, 인적 뜸한 동네 산길을 스마트폰 없이 두어 시간 걸어보는 것도. 영국 책이다 보니 등장하는 수많은 동식물과 지명, 지형에 대한 설명이 멀게 느껴져 이따금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대목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자연탐험가 누군가가 이런 책을 써주기를 고대한다.
원서에는 있었을 사진도 생략 않고 수록했으면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 자연관찰 가이드가 널리 사랑받아 이 분야 책들이 서점에서 너른 매대 하나를 독차지할 날이 오길 바란다.
강영특
제목이 매력적이고 표지도 근사해 출간 당시 눈여겨보았던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원제: The Walker’s Guide to Outdoor Clues and Signs). 땅의 형태와 특징부터 나무와 풀과 꽃, 이끼와 버섯, 암석, 바람과 구름과 무지개, 별, 해, 달, 동물들, 눈과 모래에 이르기까지, 부제 그대로 ‘우리 주변에 널린 자연의 신호와 단서를 알아보는 법’을 담은 책이다. 영국인 저자 트리스탄 굴리는 펜대만 굴리는 사람과는 좀 다른 현장형 지식인이랄까, 자연을 이용해 길을 찾는 ‘자연 내비게이션’ 전문가이다. 그는 ‘주변의 모든 풍경을 아우르는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데 정통하다.
인도네시아의 3726m 높이 활화산을 오르다 혼쭐이 난 열아홉 살 이후로도, 작은 보트를 타고 영국에서 북아프리카까지 항해하는가 하면, 투아레그 유목민과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기도 했고, 단발비행기를 타고 북대서양 단독 비행에 성공하고 홀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기도 했으니 모험가로서도 손색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홀로 산길을 걷다가 꼼짝 않고 멈춰 서서 ‘나무에서 응축된 안개가 마른 너도밤나무 이파리 더미 위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오롯이 주의를 기울여 주변 환경을 관찰하는 것, 이 책의 근본정신이기도 하다. 자연이 그런 모양,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걸 찾아보자는 것이다.
책에선 자연의 신호들을 발견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추론해내는 다양한 방법이 제시된다. 읽다 보면 셜록 홈스가 따로 없구나 싶다. 상식적인 것에서부터, 난이도가 높은 것까지 두루 망라한다.
가령 앞사람의 등짝에 붙은 파리의 수는 사람 혹은 대형 동물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보여주는 징조라는 것(당연해 보인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기온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기 때문에 온도계 대용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사전지식이 필요하다), 발치에 있는 풀의 형태를 보고 ‘오늘 분 북서풍이 풀줄기의 제일 위쪽을 기울여 놓았지만, 아래쪽이 비틀린 것으로 보아 지난 며칠 동안은 북동풍이 불었다’는 걸 알아채기도 한다(이런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사 같은지고!). 이런 사람이 가이드를 해준다면 어찌 든든하지 않을까.
책을 읽고 나면 나침반을 참조하지 않고도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음은 물론, 북두칠성의 위치를 보고 현재 시각을 알 수 있게 된다(별시계). ‘런던에서 뜬 해가 에든버러에서 뜬 해보다 항상 손가락 관절 두 개만큼 더 높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같은 날 바닷가에서 일몰을 두 차례 보는 법도 알게 된다(누워서 지켜보다가 첫 번째 일몰이 끌날 즈음 일어서서 다시 해지는 것을 구경한다). 보름달은 반달보다 두 배가 아니라 열 배쯤 밝다는 것을, 희고 밝은 초승달이 뜬 날, 달의 어두운 부분도 희미하게 보인다면 이건 지구에서 반사된 빛 때문임을 알게 된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듯 언급되는 바, 금성의 그림자를 정말 볼 수 있을지, ‘진창에 반사된 목성의 빛이 시야에 불쑥 들어왔다’는데,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독서의 부작용이 조금 염려되기는 한다. 심심함을 즐기기 위해 한가로이 산책에 나섰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아 오감이 너무 활발히 가동되고, 마음도 바빠질지 모른다. 그만큼 경험은 풍요로워지겠지만, 산책이 너무 길어질 수 있다. 들고 나간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돌아오게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주위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독서의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익숙한 길을 낯설게 바꿔놓는 근사한 경험"에 대한 바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달빛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본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보름달 뜬 맑은 날에 꼭 확인해보리라 마음먹는다. 주말의 어느 깊은 밤, 인적 뜸한 동네 산길을 스마트폰 없이 두어 시간 걸어보는 것도. 영국 책이다 보니 등장하는 수많은 동식물과 지명, 지형에 대한 설명이 멀게 느껴져 이따금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대목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자연탐험가 누군가가 이런 책을 써주기를 고대한다.
원서에는 있었을 사진도 생략 않고 수록했으면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 자연관찰 가이드가 널리 사랑받아 이 분야 책들이 서점에서 너른 매대 하나를 독차지할 날이 오길 바란다.
강영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