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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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다섯살 남자아이 하나가 유치원 교실에 들어섰다. 춘천시 동부시장에 있었던 동부유치원. 원생들 모두 다 난 생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집 밖에서 나와 홀로 세상을 맞아야 했던 그 시절, 건물도 낮설고 사람들도 낮설고 모든것이 다 새로왔다. 또래의 친구들도 만나고, 선생님 들도 만나고, 수업도 아닌 놀이를 하루종일 하는 장소였던 그 유치원 교실에서 그 아이는 아주 신기한 물건을 발견했다. 교실 앞에 있던 낡은 푸른색 칠판의 왼쪽으로 놓여져 있었던 그 큰 상자. 자기 키보다도 훨씬 더 크고 두 팔을 펴도 다 안을 수 없이 넓었던, 그 거대하고 신기한 상자는 그 아이에게 교실에서 가장 흥미롭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한 때는 거울처럼 반짝였을 것 같은 외장은 검은색도 바랠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반투명했었고, 그 상자의 외모 보다 더 신기했던것은 유치원 부원장님께서 그 상자의 중간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있는 수많은 희고 검은 지렛대들을 누르실때 나는 소리였다. 여러가지 높낮이의 소리가 때로는 짧게 때로 는 길게 울리면 어린 학생들은 그 신기한 소리에 맞추어 같이 노래를 했었다. 그때 그 한 아이 는 그 희한한 검은 상자에 매료되어 쉬는 시간만 되면 상자 주위를 맴돌았었다. 이 어린 남자 아이는 나였고, 내가 처음으로 피아노라는 악기를 만나는 순간이였다.

지금은 피아노를 공부하는 남학생들이 더 많지만 내가 피아노를 처음 접한 70년대 중반, 특히 시골이라고 여겨졌던 강원도 춘천에서는 남자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 회만 되면 피아노로 가서 그 것의 앞뒤로 세세히 살펴보고, 뚜껑을 열어 건반들을 (건반이라는 말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눌러보며 재미있어 하는 모습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소중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는데, 그때 피아노를 치시며 노래반주를 해주셨던 부원장님의 얼굴 또한 지금 도 생각이 난다. 이렇게 피아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나를 마침 그 동네 피아노 선생님이셨던 동부유치원의 원장님께서 보시고 부모님께 제의 하셨다. 피아노를 한 번 가르쳐보지시 않겠냐 고. 교육에 관심이 무척 많으셨던 어머니께서 허락을 하셔서 나와 한 학년 위인 누이와 같이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파격적인 결정이였다고 생각이 든다. 피아 노라는 악기 자체도 그때는 그렇게 흔치 않았지만, 매사에 호기심이 많으셨던 어머니께서는 당 신께서도 흥미롭고 궁금해 하셨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시작하게 된 피아노! 아직도 그 첫 렛슨이 기억난다. 그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유치원 교실 뒤에 있는 방 안에 또 다른 피아노가 있 었고 피아노 수업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그때도 나이가 좀 있으셔서 마치 할머니같이 느껴졌던 동부유치원 원장님, 원장님께서 개인렛슨을 하셨던 그 방 특유의 내음, 그리고 나에게 주어 졌던 생애 최초의 악보, 바이엘 상권. 지금 쓰는 악보들과 비교했을때 소박하기 그지없는 그 책 의 표지는 붉은색과 검은색의 잉크의 투톤으로 인쇄되었었고, 그 책 속에는 처음보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은 좋고 다양한 교재들이 많이 나와있어서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하며 피 아노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그당시에는 바이엘이 거의 모든 피아노 학도들의 유일한 첫 교재였다. 다섯개의 줄, 음자리표, 다양한 길이의 음표와 쉼표: 이렇게 악보의 기본적인 정 보가 머리에 입력이 되면 그 다음에는 음표가 오선지에 그려진 위치에 따라 건반 위의 어떤 레 버를 눌러야 되는지를 배운다. 도-레-도-레-도, 도-레-미-도-레-미-도, 미-레-도-미-레-도[1]미… 이렇게 시작하여 배우는 피아노. 악보를 보며 각 음들의 건반상의 위치를 익히고 음표 를 통해 음의 길이, 즉 시간의 나눔을 배우기 시작한다. 사실상 그때부터 초등학교까지 배웠던 피아노는 거의 건반 타자법을 배우기에 불과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될때까지도 크레셴도 가 뭔지 몰랐었으니까. 그 꼬불꼬불하고 작은 그림이 (cresc.) 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 었었다. 그래도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것이 남들보다 빨랐던 덕분인지 나는 신동소리를 들 으며 피아노를 매우 빠른 속도로 배워나갔다. 그러나 피아노를 친다는게 나한테는 눈으로 악 보를 보고 그 심볼들을 손으로 해당하는 건반을 누르는 작업이 퍽 단순하게 느껴졌어서 바이 엘 상 하권을 정말 빠르게 떼고 그 다음의 과정인 체르니, 소나티네 등의 곡들도 흡수하다시피 했다. 유치원 졸업 (?) 후 춘천 교동국민학교로 갔는데 그때부터는 집과 가까웠던 피아노학원 에 다니면서 여러가지 다양한 곡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모짜르트, 베토벤 등 주로 독일계 음악 이 레퍼토리의 주를 이뤘고 피아노 건반 타자 공부는 계속 되었다. 국민학교 4학년때 황숙중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황선생님은 내게 건반 타자법이 아닌, 음악이라는 세계의 존재와 관 심을 갖게 해주셨다. 열심히 가르쳐 주신 덕분에 각종 콩쿠르에도 나가서 입상도 했지만 그때 만 해도 내가 피아노를 전공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다만 피아노를 칠때 즐거웠고, 또 내가 피아노를 연주하면 사람들에게 많은 칭찬을 받을 수 있었기에 더 신이나서 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아노에 대한 나의 열정은 더해갔고, 피아노를 뺀 나의 삶은 어린 마음에도 불구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피아노병에 걸렸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 중학교 에 진학하니 아버지께서 그러셨다. 이제는 취미활동은 좀 그만두고 집중적으로 공부에 열중해 야 하지 않겠냐고. 다시 말하면 이제 피아노는 그만 하고 공부에 전념하라는 말씀이셨다. 지 금 생각하면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당연한 말씀이셨지만, 음악이 뭔지도 잘 몰랐던 나는 무슨 뚝심인지 계속 하겠다고 우겼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신경전을 하다가 마침내 아버지께서 피아노 공부를 허락하시는 계기가 생겼다. 전국틴에이저피아노콩쿠르에 나가서 1등을 할 때였는데 시상식에서 심사위원장께서 부모님을 세우시더니 내 칭찬을 공개적 으로 하셨다. 그때 아버지께서 내가 지니고 있었던 피아노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시고 그때부터 나의 음악 교육에 대해 막대한 열정을 쏟기 시작하셨다. 그 이후에 나갔 었던 콩쿠르들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었고 급기야는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내가 지금 음악가라는게 신기하기도 하다. 모든것이 서울에 밀집되어 있던 시절 — 그때 는 지방자치제도 아니어서 전 국민이 여권신청도 서울에서만 할 수 있었다 — 시골 강원도 춘 천에서 남자아이가 취미로 시작한 피아노를 전공하게 되고 급기야 유학까지 다녀와 이제는 전 문연주가로 활동을 하고 있으니!

여기까지는 내가 어떻게 피아노라는 악기를 만나 평생을 바치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의 모든 음악가들에게는 이렇게 각자만의 이야기가 있을것이다. 나는 다른 음악가들을 만 나면 자주 하는 질문이 바로 이에 대해서, 바로 그 악기를 전공하게 된 계기이다. 그 이야기 안 에는 각자의 인생 스토리가 녹아있기에 더욱 흥미진진하고 귀하다. 그러고 보니 음악가들 말 고도 궁금해진다. 이 세상 모든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을텐데 언제 그 스토리를 다 들어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