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살아있는 거리 예술 생태계, '그라피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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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미경의 파리통신 - 파리의 그라피티 전시
거리 예술 생태계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파리
거리 예술 생태계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파리
오랜 기간 축적된 파리의 거리 예술 생태계를 알 수 있는 전시가 기획되었다.세계적인 영국 출신 작가 뱅크시(Banksy)부터 미스틱(Miss Tic), 인베이더(invader), 스운(Swoon), 앙드레(André) 그리고 세스(Seth)에 이르기까지 70여명의 거리 예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도시 예술, 거리 예술, 그리고 그라피티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거리 예술과 그라피티는 벽화, 낙서, 캘리그래피,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일반적으로 혼용되어 사용된다.
거리 예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그라피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파리의 심장부에 있는 파리시청이 색색으로 피어난 벽과 거리들로 붐붐 울리고 있다.
‘파리의 도시 예술 60년’(Capitale(s): 60 ans d’art urbain à Paris)을 조명하는 전시로 연일 쇄도하는 미술 애호가들과 대중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다. 작년 10월 15일부터 첫선을 보인 이 전시는 2023년 6월 3일까지 열린다.
도시 예술은 거리 예술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설치 미술, 공공 미술(조형물, 벽화), 거리 예술, 퍼포먼스, 페스티벌, 미디어 파사드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라피티 예술가는 그라피티를 많이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나름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태그다.
태그는 그라피티의 출발점으로, 예술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인이면서 별칭이다.
예술적 형상화 과정은 그라피티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으로 자기만의 스타일과 양식을 찾아내고 그라피티의 기법을 선택하여 개발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다.
그라피티 기법으로는 콜라주, 스티커, 락커 스프레이를 이용한 그라피티 바밍(Bombing), 벽의 손상이 적고 깔끔한 스텐실, 타일을 붙여 만든 모자이크 등 다양하다.
1960~1970년대 파리의 그라피티 여명기에 활동했던, 그라피티의 선구자 제라드 즐로티카미앙(Gérard Zlotykamien)과 에르네스트 피뇽-에르네스트(Ernest Pignon-Ernest)의 예술 활동으로부터 거리 예술이 시작되었다.
1980년대 파리는 유럽의 가장 큰 캔버스로 탈바꿈된다. 블랙 르 하(Blek le Rat)는 검은 쥐를 스텐실 기법으로 그렸다.
쥐는 체제 저항의 코드로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80년에는 모스코 에 아소시에(Mosko et associés), 스피디 그라피토(Speedy Graphito), 네모(Nemo), 제롬 메나제(Jérôme Mesnager), 캡틴 플루오(Captain Fluo), 미스 틱(Miss Tic), 그리고 제프 에로졸(Jef Aérosol) 등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제프 에로졸은 퐁피두 센터 옆 스트라빈스키 분수 앞에 스텐실 기법으로 형상화한 달리 초상화를 그린 작가다.
1990년은 빛의 시기다. 그러나 그 여정은 쉽지 않았다. 1991년 3월 루브르 지하철 역을 포격하듯 그려진 그라피티는 대중과 미디어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그라피티를 반달리즘으로 여기는 대중들과 새로운 예술적 형식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대립과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비로소 거리 예술은 새로운 역동적 예술 형식과 사회 비판적 사유와 실천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그랑팔레 (2009) 팔레 드 도쿄(2002, 2013, 2021), 퐁피두 센터(2013), 루브르(2019)에 이르기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거리 예술이 미술관의 높은 문턱을 넘었다.
2000년대 파리는 거리 예술을 대표하는 세계의 창이 되었다.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들은 독특한 방식과 세계관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미국 출신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 뉴욕커 스운(Swoon), 영국 출신 뱅크시(Banksy), 포루투칼에서 온 빌스(Vhils), 그리고 프랑스인 JR 등이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파리의 거리 예술가들과 협업을 통해 독창적인 양식과 기법을 공유했고 다양하고 새로운 예술 작품을 양산해왔다.
거리 예술의 예술적 의미를 찾아서
17세기 이래 전통적 관전으로 열린 르 살롱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마네 등 초기 인상화 화가들이 겪었던 수모, 르 살롱에 맞서 전위적 작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살롱 도똔느의 반격, 그 덕에 야수파와 큐비즘이 빛을 볼 수 있었다.이처럼 마네, 마티스, 피카소마저 위축시킨 예술계의 보수성은 항상 새로운 도전의 물결 속에서 역동적 기상을 품은 젊은 예술가들을 수용하며 예술 본연의 의미를 되새길 수밖에 없다.
거리 예술가들은 체제 저항의 주체로서 예술가와 예술 작품을 향유하는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파괴와 창조의 벽을 넘어섰다.
즉 소외자들의 저항적 예술 행위가 반달리즘의 혐오를 견디고 21세기 새로운 창작 코드가 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각각의 예술가들의 미학적 영역 구축과 주체적 예술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관용과 새로운 예술 실천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있기에 가능했다. 파리는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도시로 해마다 새로운 그라피티가 그려지고, 지워지고 다시 그려지고 있다.
마치 파리는 수많은 덧칠로 새로 태어나는 양피지가 되었다. 거리 예술이 만들어내는 활기와 역동성, 다양한 양식과 독창적 기법은 다시 써지고 다시 그려지는 시도와 실습으로 자유로운 예술 정신을 담고 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의 말처럼 “파리는 초대의 땅”이다.
이 역사적으로 응축된 창조적 기운이 전세계의 재능있는 예술가를 불러 모으는 구심점이자 파리 예술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켜주고 있다.
- 첨부자료
- DOC 김미경_그라피티.doc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