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대목 앞두고 31채 잿더미 '생계 막막'…제대로 된 보상 촉구
[강릉산불 르포] 잿더미 된 금고 속 돈뭉치…숙박업주 '망연자실'
"그냥 막막할 뿐입니다.

책상에는 일꾼들 인건비로 준비한 1천만원도 들어있었는데…"
12일 강원 강릉시 안현동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신모(76)씨는 전날 산불로 불탄 건물에서 잿더미가 된 5만원권 뭉치를 발견하자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금고 속에는 뭉칫돈 외에도 통장과 각종 증서가 가득했지만, 모두 검게 타버리고 말았다.

최대 순간풍속 초속 30m의 태풍급 바람을 타고 곳곳으로 퍼진 산불은 신씨의 펜션도 덮쳤다.

그는 전날 오후 불이 번진다는 소식에 황급히 몸만 빠져나와 이재민 대피소가 마련된 아이스아레나로 향했다.

몸은 대피소에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펜션을 향했다.

대피소에는 그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강릉산불 르포] 잿더미 된 금고 속 돈뭉치…숙박업주 '망연자실'
해가 뜨자 신씨는 아들과 함께 펜션을 찾았다.

산불로 피해가 클 것이라 마음먹고 갔지만, 막상 불타서 뼈대만 남은 건물을 보자 그저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10년 넘게 잘 가꾼 펜션이었다.

손님들이 편한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정성껏 관리했다.

특히 올겨울부터 5개월가량 장사를 포기하고 리모델링에 들어가 곧 단장을 마칠 예정이었다.

산뜻해진 펜션에서 여름 대목을 누릴 생각에 흐뭇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화마는 건물과 함께 그 꿈도 태워버리고 말았다.

[강릉산불 르포] 잿더미 된 금고 속 돈뭉치…숙박업주 '망연자실'
생계를 잃어버린 이는 신씨뿐만 아니었다.

사근진 해변 인근에서 서핑숍과 식당, 게스트하우스를 5년째 운영하던 이모(41)씨 역시 이번 산불로 건물 2동을 모두 잃어버렸다.

이씨는 5월 5일 어린이날 개장을 목표로 업소 새 단장에 나섰다.

앞마당에 조명을 새로 달고 포토존도 꾸몄다.

서핑 강습 공간 마련과 인테리어 등에 수 천만원을 들였다.

다음 달이면 깔끔해진 시설에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산불이라는 불청객이 먼저 닥쳤다.

세입자인 이씨는 그저 앞날이 막막하기만 하다.

[강릉산불 르포] 잿더미 된 금고 속 돈뭉치…숙박업주 '망연자실'
화재보험을 들었지만, 보상 금액이 투자금에 턱없이 부족한 데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주는 보상·지원금 역시 아직은 불투명한 까닭이다.

이씨는 "이번 화재로 득을 보겠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껏 투자한 금액만큼은 손해 보지 않길 바랄 뿐"이라며 "정부나 시가 합리적인 보상·지원 정책을 피해 주민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릉시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까지 펜션 28채와 숙박시설 3채가 불에 탄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시는 이날부터 정확한 현장 조사에 들어가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산불로 큰 피해를 당한 강릉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으로 피해 조사를 실시해 복구에 필요한 국비 지원 규모를 산정하고 신속히 지원할 계획이다.

[강릉산불 르포] 잿더미 된 금고 속 돈뭉치…숙박업주 '망연자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