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에 이렇게 큰 산불은 처음"…사투 벌인 소방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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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성 광천119안전센터장과 대원들
사흘 지속된 홍성산불
이틀차 고산사 대웅전 주변으로 산능성
3면에서 네 차례 차례로 넘어와
"산불 진화는 한계와의 싸움"
사흘 지속된 홍성산불
이틀차 고산사 대웅전 주변으로 산능성
3면에서 네 차례 차례로 넘어와
"산불 진화는 한계와의 싸움"
1일차 "소방 생활 27년, 홍성에 이렇게 큰 산불은 처음이었다."
지난 2일 일요일 오전 11시. 충남 홍성군 서부면 중리의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불은 순간풍속 최대 초당 13m의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옮겨붙었다. 홍성엔 수주 째 건조한 날씨가 지속됐다. 마을과 인접한 야트막한 야산은 극도로 매말라 산불이 옮겨붙기 좋은 최적의 조건이 돼있었다. 깊은 산과는 달리 둥근 형태의 낮은 산은 음지(陰地)가 없어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땅과 나무도 기껏 머금은 수분을 날려보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홍성군 광천119안전센터 대원 36명도 즉시 소집돼 진화작업에 투입됐다. 대원들은 중리 인근와 인접한 서부면 어사리와 남당리 일원으로 배치됐다. 이익성 광천센터장은 27년차 베테랑 소방관. 그와 대원들은 어사리 일대의 민가, 태양광 발전시설, 남당리 새 농장 등에서 진화작업을 벌였다.
홍성의 서해와 인접해있다. 야산 높이는 100m, 200m 가량으로 동부 내륙에 비해 낮다. 내륙과는 달리 땅의 높이가 해발고도와 가까워 고도 전체가 온전히 산의 높이다. 대형 나무는 드물고 아카시아, 철쭉 등이 우거져 진압하는 대원의 움직임을 막았다.
줄어들 줄 모르는 바람과 건조한 날씨는 진화작업에 악재였다. 산림청, 소방대원 뿐 아니라 인근 지자체의 인력 및 장비가 총동원되는 소방 대응 3단계가 발령돼 총력전을 폈다.
곧 불길을 잡을 것이라는 기대는 오산이었다. 홍성은 전답을 중심으로 마을이 조성된 전형적 농촌. 이 센터장의 기억속에 십수년간 대형 산불은 없었다.
오후들어 바람이 거세졌고, 불이 번지는 속도가 진압하는 속도를 앞질렀다. 화선이 8km로 불어났다. 일몰이 다가왔지만, 눈앞의 불은 좀처럼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곧 진화헬기가 헬기가 철수할 시간대였다.
2일차 "고산사(高山寺)가 탈 위기니 자원해달라"
이 센터장은 27년여 소방 근무 대부분을 홍성에서 보냈다. 그동안의 근무를 돌이켜 보면 홍성에선 산불이 발생하더라도 대부분 몇시간 안에 진압됐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무전이 쉴새없이 울렸다. 홍성 전역에 투입된 대원들은 '급박하다', '용수차가 필요하다'고 지원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홍성 산불은 광범위하고 동시다발적이었다.
그와 대원들은 밤새 6~7곳의 진화 현장에 연이어 투입됐다. 일몰 후 진화는 신체적 한계와의 싸움이다. 정신은 몽롱해지고 젖산이 쌓인 몸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눈앞의 화마와 싸우는 게 우선이었다.
어느새 이튿날이 왔다. 광천센터 대원들은 3일 새벽 4시께 결성면 교향리 진화작업에 투입됐다. 야산을 다 태우고 민가로 불이 옮겨붙기 직전이었다. 진화는 해가 뜨고 헬기가 투입되고서야 끝났다.
교향리 산불을 잡고 나니 잠시 짬이 났다. 대원들은 남당항 주차장 으로 이동해 홍성산불 지휘본부에서 식사를 하는 등 최소한의 개인 정비를 했다. 이 센터장은 쉬는 대신 지휘본부 회의에 참여했다. "산불이 고산사로 옮겨붙을 수 있으니, 소방대장 한 명이 자원해달라." 지체없이 손을 들었다.
결성면 무량리에 있는 고산사는 신라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석탑으로 미뤄볼 때 고려시대 사찰로 짐작된다. 고산사 대웅전은 뛰어나고 독창적 목조양식을 평가받아 보물 399호로로 지정있다. 그 안에는 충남 유형문화제 118호로 지정된 아미타불좌상이 놓여있다.
문화재청, 소방청, 산림청 등은 강릉 양양 낙산사 대화재(2005년) 이후 절 화재에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문화재청은 산불 초기부터 충남 소방에 고산사 보호를 요청했다. 불길이 인접해오자 본격적진화 작업이 필요해졌다.
전통사찰 안의 목조건축물은 수십, 수백년간 자연건조된 목재로 구성돼있다. 건조목은 착화가 매우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비화(날아다니는 불티) 뿐 아니라 복사열에도 불이 옮겨붙을 수 있다. 사찰화재가 여러 건물을 삽시간에 태우는 이유다.
고산사는 해발 236m의 청룡산 골자기에 조성된 전형적인 한국사찰이다. 무량리 원무량마을로 이어지는 동편을 제외하고 3면을 산이 둘러싸고 있다.
이 센터장은 고산사로 향하던 중 대웅전 인근의 산에 연기가 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오후 2시께 현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산 주변에 화염이나 연기가 보이진 않았다. 소화전과 사전방수 현황을 확인했다. 소방대원 7명, 방수차 및 용수운반차량과 요원 4명 등이 배치돼있었고, 홍성군 문화관광과, 산림청 요원도 도착해있었다. 그는 당일 행사를 위해 고산사에 모였던 스님들을 대피시켰다.
오후 6시께 대웅전 동북부 능선 400m 지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직 사찰과 거리는 멀었다. 산림청 항공진화대에 진화를 요청했다. 한 시간여가 지난 7시께 일몰과 함께 사찰 내부로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탄 재도 함께 날아들었다. 산불이 고산사에 임박했다는 의미였다. 재와 연기는 대웅전 뒤 청룡산 동북쪽 능선 뒤 숲을 태운 뒤 바람을 타고 넘어온 것이었다. 바람은 시시각각 방향을 바꿨고, 30분 간격으로 연기가 사찰을 채웠다 사라졌다 했다. 밤 9시30분께 대웅전 뒤편으로 화염이 보이기 시작했다. 2일 차 밤, 3일 차 새벽 "세 방향으로 다가오는 산불"
야간 진화가 주간 진화보다 유리한 점은 어둠 속에서 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는 유일한 장점이다. 대원들은 산불의 빛과 랜턴에 의지해 산을 올라야 한다. 서로의 발을 밟고, 몸이 부딪히기도 한다. 밤이되면 더욱 눈에 띄지 않는 잔가지도 떨쳐내야 한다. 천군만마와 같은 헬기는 뜰 수 없다. 땅속 나무뿌리까지 확인해야하는 잔불 정리 작업도 쉽게 할 수 없다.
이 센터장은 산불 진화차량 3대에서 호스를 전개하도록 지시했다. 소방대원, 산림청 요원, 군부대 지원병력이 호스를 지고 산에 올랐다. 산불 진화 호스는 특화된 얇은 형태로 길이는 200m 가량이다. 전개된 호스의 길이는 130m 직선거리로는 대웅전과 70m가 채 안됐다. 서너시간 사투 끝에 동북 능선의 불은 거의 잡혔다.
채 30분을 쉬었을까. 날이 바뀐 새벽 2시께 이번엔 서북쪽에서 불이 접근해왔다. 호스 2개를 전개했다. 이 불은 작업 1시간여 만에 진압됐다.
새벽 4시를 즈음해 이번엔 대웅전 서남부에 광범위한 불길이 보였다. 첫 번째, 두 번째 불보다 넓은 범위로 능선을 타고 산불이 접근해오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고산사에 모인 200여명이 총동원돼 진화와 잔불 처리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날이 완전히 밝아오기도 전헤 헬기가 다가와 물을 쏟아내면서 진화에 속도가 붙었다.
3일차 오전 10시. 날이 밝고 다시 날씨가 건조해지자 대웅전 서남부에서 능선에서 다시금 불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방, 산림청, 지자체 대원들은 마지막 힘을 내 정오를 즈음해 불을 완전히 껐다. 드디어 고산사 주변 산불이 일단락것.
오후가 되자 홍성 산불의 큰 줄기가 잡혀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센터장은 인력을 완전히 뺄 순 없었다. 잔불이 언제 또 타오를지 몰랐기 때문이다. 잔불 정리가 마무리되던 오후 1시께 그는 산에 올라 불이 접근해왔던 대웅전 동북, 서북, 서남 지역의 능선을 연이어 둘러봤다. 고산사를 둘러싼 3면의 숲이 고스란히 타 있었다. 가장 위험했던 곳은 북쪽이었다. 산불이 대웅전 70m까지 인접했다. 대원들의 밤샘 진화가 없었다면 고찰 고산사는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투입된 인원 중 부상자는 없었다. 3시반께 능선에서 철수해 다시 절에서 대기했다. 3일 차 오후 "이제서야 내린, 고맙지만 야속한 비"
4일 오후 4시. 홍성엔 예보(밤 9시)보다 빠르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반가운 비였지만, 그는 야속했다. '조금만 더 빨리 내리지'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한편으로 지금도 홍성 전역, 전국에서 사투할 동료를 생각하면 다행이라고 여겼다.
비는 산불 진화에 천우신조다. 수십대의 헬기가 연이어 물을 뿌리는 것과 같다. 헬기에서 뿌려진 물은 습식 사우나 안의 미세 물방울 처럼 비산(飛散)된다. 진화조건을 용이하게 할 뿐 헬기만으로 불을 완전히 끌 순 없다. 이 센터장은 "광범위한 지역에 지속적으로 비가 내리면 땅에 물이 스며들어 잔불을 한꺼번에 없앨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림당국은 4시께 홍성 산불 주불 진화를, 비가 내린 뒤인 6시 완전 진화를 발표했다. 이 센터장은 "고산사 작전은 지자체, 문화재청과 산림청의 합동 작전이었다"며 "특히 산림청 현장 진화요원과, 항공진화대가 큰 역할을 했다"고 공을 돌렸다. 이 센터장과 대원은 센터로 돌아와 장비를 정비를 마치고, 오후 7시 사흘만에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사흘간 지속된 홍성산불은 일대 숲 1600ha를 태웠다. 주택과 축사 총 79동, 창고 24동, 비닐하우스 48동, 컨테이너를 비롯한 기타 시설 21동에 피해를 입혔다. 불길을 막아냈던 고산사와는 달리 충남 향토문화재인 양곡사는 일부 소실됐다.
이번 산불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길에 대피할 수 없는 가축 8만1153마리가 폐사했다. 당국은 홍성산불의 원인을 벌목작업 중 실화로 추정하고 있다. 아직 정확한 원인에 대해선 정밀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큰 불이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 불을 붙이고 직접 접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출근길에 종종 쓰레기, 농업부산물을 태우고 있는 모습을 종종 봐왔다"며 "시골 어르신들이 뭔갈 태우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홍성=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지난 2일 일요일 오전 11시. 충남 홍성군 서부면 중리의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불은 순간풍속 최대 초당 13m의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옮겨붙었다. 홍성엔 수주 째 건조한 날씨가 지속됐다. 마을과 인접한 야트막한 야산은 극도로 매말라 산불이 옮겨붙기 좋은 최적의 조건이 돼있었다. 깊은 산과는 달리 둥근 형태의 낮은 산은 음지(陰地)가 없어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땅과 나무도 기껏 머금은 수분을 날려보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홍성군 광천119안전센터 대원 36명도 즉시 소집돼 진화작업에 투입됐다. 대원들은 중리 인근와 인접한 서부면 어사리와 남당리 일원으로 배치됐다. 이익성 광천센터장은 27년차 베테랑 소방관. 그와 대원들은 어사리 일대의 민가, 태양광 발전시설, 남당리 새 농장 등에서 진화작업을 벌였다.
홍성의 서해와 인접해있다. 야산 높이는 100m, 200m 가량으로 동부 내륙에 비해 낮다. 내륙과는 달리 땅의 높이가 해발고도와 가까워 고도 전체가 온전히 산의 높이다. 대형 나무는 드물고 아카시아, 철쭉 등이 우거져 진압하는 대원의 움직임을 막았다.
줄어들 줄 모르는 바람과 건조한 날씨는 진화작업에 악재였다. 산림청, 소방대원 뿐 아니라 인근 지자체의 인력 및 장비가 총동원되는 소방 대응 3단계가 발령돼 총력전을 폈다.
곧 불길을 잡을 것이라는 기대는 오산이었다. 홍성은 전답을 중심으로 마을이 조성된 전형적 농촌. 이 센터장의 기억속에 십수년간 대형 산불은 없었다.
오후들어 바람이 거세졌고, 불이 번지는 속도가 진압하는 속도를 앞질렀다. 화선이 8km로 불어났다. 일몰이 다가왔지만, 눈앞의 불은 좀처럼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곧 진화헬기가 헬기가 철수할 시간대였다.
2일차 "고산사(高山寺)가 탈 위기니 자원해달라"
이 센터장은 27년여 소방 근무 대부분을 홍성에서 보냈다. 그동안의 근무를 돌이켜 보면 홍성에선 산불이 발생하더라도 대부분 몇시간 안에 진압됐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무전이 쉴새없이 울렸다. 홍성 전역에 투입된 대원들은 '급박하다', '용수차가 필요하다'고 지원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홍성 산불은 광범위하고 동시다발적이었다.
그와 대원들은 밤새 6~7곳의 진화 현장에 연이어 투입됐다. 일몰 후 진화는 신체적 한계와의 싸움이다. 정신은 몽롱해지고 젖산이 쌓인 몸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눈앞의 화마와 싸우는 게 우선이었다.
어느새 이튿날이 왔다. 광천센터 대원들은 3일 새벽 4시께 결성면 교향리 진화작업에 투입됐다. 야산을 다 태우고 민가로 불이 옮겨붙기 직전이었다. 진화는 해가 뜨고 헬기가 투입되고서야 끝났다.
교향리 산불을 잡고 나니 잠시 짬이 났다. 대원들은 남당항 주차장 으로 이동해 홍성산불 지휘본부에서 식사를 하는 등 최소한의 개인 정비를 했다. 이 센터장은 쉬는 대신 지휘본부 회의에 참여했다. "산불이 고산사로 옮겨붙을 수 있으니, 소방대장 한 명이 자원해달라." 지체없이 손을 들었다.
결성면 무량리에 있는 고산사는 신라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석탑으로 미뤄볼 때 고려시대 사찰로 짐작된다. 고산사 대웅전은 뛰어나고 독창적 목조양식을 평가받아 보물 399호로로 지정있다. 그 안에는 충남 유형문화제 118호로 지정된 아미타불좌상이 놓여있다.
문화재청, 소방청, 산림청 등은 강릉 양양 낙산사 대화재(2005년) 이후 절 화재에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문화재청은 산불 초기부터 충남 소방에 고산사 보호를 요청했다. 불길이 인접해오자 본격적진화 작업이 필요해졌다.
전통사찰 안의 목조건축물은 수십, 수백년간 자연건조된 목재로 구성돼있다. 건조목은 착화가 매우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비화(날아다니는 불티) 뿐 아니라 복사열에도 불이 옮겨붙을 수 있다. 사찰화재가 여러 건물을 삽시간에 태우는 이유다.
고산사는 해발 236m의 청룡산 골자기에 조성된 전형적인 한국사찰이다. 무량리 원무량마을로 이어지는 동편을 제외하고 3면을 산이 둘러싸고 있다.
이 센터장은 고산사로 향하던 중 대웅전 인근의 산에 연기가 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오후 2시께 현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산 주변에 화염이나 연기가 보이진 않았다. 소화전과 사전방수 현황을 확인했다. 소방대원 7명, 방수차 및 용수운반차량과 요원 4명 등이 배치돼있었고, 홍성군 문화관광과, 산림청 요원도 도착해있었다. 그는 당일 행사를 위해 고산사에 모였던 스님들을 대피시켰다.
오후 6시께 대웅전 동북부 능선 400m 지점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직 사찰과 거리는 멀었다. 산림청 항공진화대에 진화를 요청했다. 한 시간여가 지난 7시께 일몰과 함께 사찰 내부로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탄 재도 함께 날아들었다. 산불이 고산사에 임박했다는 의미였다. 재와 연기는 대웅전 뒤 청룡산 동북쪽 능선 뒤 숲을 태운 뒤 바람을 타고 넘어온 것이었다. 바람은 시시각각 방향을 바꿨고, 30분 간격으로 연기가 사찰을 채웠다 사라졌다 했다. 밤 9시30분께 대웅전 뒤편으로 화염이 보이기 시작했다. 2일 차 밤, 3일 차 새벽 "세 방향으로 다가오는 산불"
야간 진화가 주간 진화보다 유리한 점은 어둠 속에서 불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는 유일한 장점이다. 대원들은 산불의 빛과 랜턴에 의지해 산을 올라야 한다. 서로의 발을 밟고, 몸이 부딪히기도 한다. 밤이되면 더욱 눈에 띄지 않는 잔가지도 떨쳐내야 한다. 천군만마와 같은 헬기는 뜰 수 없다. 땅속 나무뿌리까지 확인해야하는 잔불 정리 작업도 쉽게 할 수 없다.
이 센터장은 산불 진화차량 3대에서 호스를 전개하도록 지시했다. 소방대원, 산림청 요원, 군부대 지원병력이 호스를 지고 산에 올랐다. 산불 진화 호스는 특화된 얇은 형태로 길이는 200m 가량이다. 전개된 호스의 길이는 130m 직선거리로는 대웅전과 70m가 채 안됐다. 서너시간 사투 끝에 동북 능선의 불은 거의 잡혔다.
채 30분을 쉬었을까. 날이 바뀐 새벽 2시께 이번엔 서북쪽에서 불이 접근해왔다. 호스 2개를 전개했다. 이 불은 작업 1시간여 만에 진압됐다.
새벽 4시를 즈음해 이번엔 대웅전 서남부에 광범위한 불길이 보였다. 첫 번째, 두 번째 불보다 넓은 범위로 능선을 타고 산불이 접근해오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고산사에 모인 200여명이 총동원돼 진화와 잔불 처리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날이 완전히 밝아오기도 전헤 헬기가 다가와 물을 쏟아내면서 진화에 속도가 붙었다.
3일차 오전 10시. 날이 밝고 다시 날씨가 건조해지자 대웅전 서남부에서 능선에서 다시금 불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방, 산림청, 지자체 대원들은 마지막 힘을 내 정오를 즈음해 불을 완전히 껐다. 드디어 고산사 주변 산불이 일단락것.
오후가 되자 홍성 산불의 큰 줄기가 잡혀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센터장은 인력을 완전히 뺄 순 없었다. 잔불이 언제 또 타오를지 몰랐기 때문이다. 잔불 정리가 마무리되던 오후 1시께 그는 산에 올라 불이 접근해왔던 대웅전 동북, 서북, 서남 지역의 능선을 연이어 둘러봤다. 고산사를 둘러싼 3면의 숲이 고스란히 타 있었다. 가장 위험했던 곳은 북쪽이었다. 산불이 대웅전 70m까지 인접했다. 대원들의 밤샘 진화가 없었다면 고찰 고산사는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투입된 인원 중 부상자는 없었다. 3시반께 능선에서 철수해 다시 절에서 대기했다. 3일 차 오후 "이제서야 내린, 고맙지만 야속한 비"
4일 오후 4시. 홍성엔 예보(밤 9시)보다 빠르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반가운 비였지만, 그는 야속했다. '조금만 더 빨리 내리지'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한편으로 지금도 홍성 전역, 전국에서 사투할 동료를 생각하면 다행이라고 여겼다.
비는 산불 진화에 천우신조다. 수십대의 헬기가 연이어 물을 뿌리는 것과 같다. 헬기에서 뿌려진 물은 습식 사우나 안의 미세 물방울 처럼 비산(飛散)된다. 진화조건을 용이하게 할 뿐 헬기만으로 불을 완전히 끌 순 없다. 이 센터장은 "광범위한 지역에 지속적으로 비가 내리면 땅에 물이 스며들어 잔불을 한꺼번에 없앨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림당국은 4시께 홍성 산불 주불 진화를, 비가 내린 뒤인 6시 완전 진화를 발표했다. 이 센터장은 "고산사 작전은 지자체, 문화재청과 산림청의 합동 작전이었다"며 "특히 산림청 현장 진화요원과, 항공진화대가 큰 역할을 했다"고 공을 돌렸다. 이 센터장과 대원은 센터로 돌아와 장비를 정비를 마치고, 오후 7시 사흘만에 집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사흘간 지속된 홍성산불은 일대 숲 1600ha를 태웠다. 주택과 축사 총 79동, 창고 24동, 비닐하우스 48동, 컨테이너를 비롯한 기타 시설 21동에 피해를 입혔다. 불길을 막아냈던 고산사와는 달리 충남 향토문화재인 양곡사는 일부 소실됐다.
이번 산불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길에 대피할 수 없는 가축 8만1153마리가 폐사했다. 당국은 홍성산불의 원인을 벌목작업 중 실화로 추정하고 있다. 아직 정확한 원인에 대해선 정밀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큰 불이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 불을 붙이고 직접 접촉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출근길에 종종 쓰레기, 농업부산물을 태우고 있는 모습을 종종 봐왔다"며 "시골 어르신들이 뭔갈 태우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홍성=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