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최소 내년까지 지속되는 것을 전제로 전략을 수립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현지시간) 최근 유출된 미국 정부 문건을 분석해 “미 국방부 정보국(DIA)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하고 종전 협상도 거부하는 상황이 2024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일부 탈환하고 러시아 군에 손실을 입히더라도 평화 협상으로 이어지긴 힘들다는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국 영토에서 러시아군이 전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에 군수지원을 계속 하면서 휴전 협정에는 소극적이다. 문건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2월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구성원들에게 “휴전 협정은 무익하며 러시아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미 정보당국의 전황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1년여 기간의 전쟁으로 다수의 사망·부상자가 발생하고 무기와 보급품이 고갈돼 효과적인 작전을 벌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말까지 전투를 지속해도 한 쪽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미국 민간 연구소인 독일마셜펀드의 헤더 콘리 회장은 "(전쟁은)늘 누가 먼저 자원이 고갈되느냐의 싸움"이라며 “자원이 고갈된 후에야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미국 정보당국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우세를 점하는 시나리오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교착상태가 지속된다면 우크라이나가 총동원령을 내려 추가 병력을 전선에 투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크라이나가 우위를 점하는 시나리오에서는 "추가 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가 위험한 작전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이 경우 러시아가 비재래식 무기 사용을 늘릴 위험이 높다는 게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을 더 확대하거나 중국이 러시아에 대규모 살상무기 지원을 개시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다만 문건은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 가능성은 여전히 낮게 봤다. 반대로 러시아가 우위를 점할 경우에도 푸틴 대통령은 휴전 대신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나 더 광범위한 영토 병합을 노리고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