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앞 현수막 싸움 >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됐다. 해당 법안의 찬반을 다투는 여야 현수막이 국회 앞에 걸려 있다.   강은구 기자
< 국회 앞 현수막 싸움 >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됐다. 해당 법안의 찬반을 다투는 여야 현수막이 국회 앞에 걸려 있다. 강은구 기자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남는 쌀 의무매입법)은 13일 국회에서 부결됐지만 막대한 사회적 갈등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 시절에는 현 정부·여당과 같은 이유로 양곡관리법을 처리하지 않다가 정권이 바뀌고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자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민주당이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도해 농민 표심을 얻으려고 정략적으로 양곡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농촌에서는 쌀 농가와 다른 농민들 간 갈등이 심화했다.

○野 정략적으로 거부권 유도

양곡법 논란은 지난해 8월 시작됐다. 민주당이 쌀 생산량이 정부 목표보다 3% 이상 초과하거나 쌀값이 5% 이상 하락할 때 정부에 전량 매입 의무를 지우는 양곡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다. 2021년 풍년으로 쌀값이 전년 대비 20% 이상 떨어지자 농가 소득을 안정화하겠다는 게 명분이었다.

9월 1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제도가 쌀 공급을 과잉되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미 연평균 20만t의 쌀이 과잉 공급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 매입할 경우 논에 벼 대신 밀, 콩 등 대체작물을 심을 때 인센티브를 줘 쌀 수급 균형을 유도하려던 정책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9월 14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쌀값이 심각하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이후 국회 농해수위 소위에서 양곡법 개정안을 단독 통과시킨 데 이어 12월엔 단독으로 본회의 직회부를 결정했다.

그러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연평균 23만t 수준인 쌀 초과 생산량이 2030년 63만t으로 늘고, 80㎏(한 가마니)에 18만~20만원인 산지 쌀값이 오히려 17만원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민주당은 “정부 입김이 센 국책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민주당은 결국 지난 3월 단독으로 본회의에서 양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윤 대통령은 이달 4일 취임 후 첫 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농가 두쪽 갈려 갈등만

1년 가까이 이어진 양곡법 논란은 농촌사회에 갈등만 남겼다.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의무 매입하면 2030년에는 쌀 매입·보관에 1조4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 것이란 농경연 전망이 나오자 축산, 원예, 과수 농가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도 “축산 분야 예산 축소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반면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쌀생산자협회 등은 양곡법 개정을 요구했다.

고령농과 청년농 간 갈등도 불거졌다. 청년 농업인이 주도하는 한국후계농업경영인연합회는 “쌀농사는 기계화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재배가 쉬운 만큼 판로 부담이 해소되면 다른 작물로의 유인이 쉽지 않아 수급 조절 기능이 약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배가 쉬워 고령농 중심으로 이뤄지는 쌀 농사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가 청년·후계농이 중심인 스마트농업, 고부가가치 작물 재배에 대한 지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03만 호인 전체 농가 중 쌀 농가는 51%다. 농가 인구 221만5000명 중 65세 이상도 47%다. 한 해 17조원 수준인 농식품부 예산을 둘러싸고 농민이 반으로 갈려 싸우게 된 것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