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6번째로 큰 40년 역사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는 데는 3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은행이 미 국채 매각으로 인한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자 소셜미디어(SNS)가 번개 같은 속도로 공포 심리를 퍼뜨렸고, 예금자들은 스마트폰으로 대거 자금 인출에 나섰다. ‘스마트폰 뱅크런’의 시작이었다. 모바일뱅킹과 SNS 사용의 대중화는 은행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파산에 이르는 속도를 높여 놨다. 이런 환경 변화에 “SVB 사태와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 벌어진다면 예금 인출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는 빠를 것”이라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은 시사적이다.

한은에 따르면 PC·모바일 등을 활용한 인터넷뱅킹 등록 고객 수는 지난해 2억 명을 돌파했다. 은행의 전체 입출금 거래 건수 가운데 인터넷뱅킹이 차지하는 비중은 77.7%에 달한다. 전체 인터넷뱅킹 중 모바일뱅킹 비중은 건수로는 85.4%, 금액으로는 18.6%다. 이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모바일뱅킹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위기 시 가장 빠른 속도의 ‘뱅크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포 심리가 일순간 퍼지면 대형은행도 손쓸 틈 없이 파산하는 ‘실시간 뱅크런’ 시대다. 사후 대응이 거의 불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위기인 만큼 사전 예방 체계가 중요해졌다. 위기 심리는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 은행 등 금융사 스스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가계·기업 대출 부실 등 약한 고리로 지목받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리스크 관리와 건전성 강화로 ‘신뢰 방파제’를 높여야 한다. 이렇게 쌓은 신뢰 자산이야말로 실시간 뱅크런을 막는 최상책이다. 23년째 5000만원으로 묶여 있는 예금자 보호 한도를 상향하고 위기 발생 시 예금 전액을 정부가 지급 보장하는 등 금융시장 신뢰를 높이기 위한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