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심혈관 질환 부정맥. 심장 세포가 생산하는 전기 신호에 이상이 생기면 나타나는 질환이다. 부정맥은 심장내과 전문의 사이에서도 까다로운 질환으로 꼽힌다. 원인이 워낙 다양해 부정맥을 유발하는 직접 요인을 특정하기 힘들고, 증상이 나타나는 주기도 변칙적이라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어려워서다.

양상과 치명률도 제각각이다. 심장은 네 개의 방(심실 2개, 심방 2개)으로 이뤄져 있다. 부정맥 가운데 심방 또는 심실 조기 수축은 그 자체로 치명적이진 않다. 심실세동과 심실빈맥은 급사에 이를 수 있는 악성 부정맥으로 분류된다. ‘착한 부정맥’이라는 조기 수축도 자칫하면 악성 부정맥으로 변한다. 악성 부정맥이 누적되면 심부전으로 이어진다. 심부전 환자는 심근경색 등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삽입형 제세동기를 심장에 붙이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제세동기도 완벽하진 않다. 환자들은 제세동기가 작동할 때 곧잘 ‘도끼로 찍히는 느낌’을 호소한다. 게다가 심장의 정상적 박동을 오히려 방해할 가능성도 있어 대체 기술이 시급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초과학연구원(IBS)의 현택환 나노입자연구단장(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과 이승표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연구팀이 제세동기의 단점을 보완한 신기술을 선보였다. 연구팀은 부정맥 발생 부위를 최소 충격으로 치료할 수 있는 ‘다채널 전기 자극 어레이’를 개발해 동물 실험(전임상)으로 효과를 입증했다고 14일 발표했다.

이 제품은 32개 전극 센서로 심장 전기 신호를 정밀하게 측정해 이상 신호 발생 시 적절한 자극을 준다. 서른두 곳에서 이상 여부를 감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많아야 두세 곳에서 일정한 단발성 충격을 주는 제세동기보다 훨씬 정밀하다. 부정맥이 시작된 부위를 특정한 뒤 심장에서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약한 전기 자극(역치하 자극)을 연속으로 줘서 부정맥을 유발하는 나쁜 전기 신호를 차단한다. 역치하 자극으로 치료가 안 되면 자극 강도를 차례로 높인다. 거친 제세동기와 달리 부정맥을 부드럽게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연구팀은 동물 실험에서 어레이로 자극을 가한 예방군 29마리, 그렇지 않은 대조군 29마리에 각각 심근경색을 유도했다. 실험 결과는 성공이었다. 대조군의 부정맥 발생 비율이 55%로 예방군(17%)보다 세 배가량 높았다.

이 제품은 2020년 글로벌 과학기술 데이터 분석 업체 클래리베이트애널리틱스가 노벨화학상 수상 후보자로 지목한 현택환 IBS 단장의 나노입자 기술을 토대로 개발했다. 어레이를 구성하는 32개 전극 코어의 안쪽은 은, 바깥은 금 또는 백금으로 돼 있는데 이 구조가 현 단장의 작품이다.

이승표 교수는 “부정맥은 여러 군데서 동시다발로 생기고, 한 자리에서도 나타나는 유형이 다양하다”며 “부정맥을 통증 없이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이번 연구는 의학 기술 발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임상 대상을 돼지 개 등 큰 동물로 확대할 계획이다. 데이터를 늘리면서 센서 및 자극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어드밴시스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