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도 반한 그 옷은 '새빨간 거짓말'로 시작됐다 [책마을]
유행은 돌고 돈다. 단정하고 고전적인 느낌의 ‘프레피 룩’도 10년 주기로 부활한다. 패션 저널리스트인 매기 블록은 그의 책 <프레피 룩의 왕국: 제이크루의 흥망성쇠>에서 프레피 룩이 계속해서 살아남는 이유를 설명한다. “프레피 룩은 늘 변화한다. 또 여러 세대에 걸쳐 이미 미국 문화의 일부가 됐다.”

프레피 룩은 무엇일까.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을 뜻하는 ‘프렙(prep)’에서 따온 말로, 미국 동부 명문 사립학교 학생들의 옷차림을 일컫는다. 단추를 단정히 채운 옥스퍼드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 거기에 남색 재킷을 걸친 아이비리그 대학생을 떠올리기 쉽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프레피 룩의 중심에는 미국 의류 브랜드 제이크루(J. Crew)가 있었다. 제이크루는 미국인들이 ‘무엇을 입고 싶은지’ 또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 열망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제이크루는 1983년 아서 시나이더가 설립했다. 뼛속까지 장사꾼이던 그는 프레피 룩 분야에서 돈 냄새를 맡았다.

당시 ‘랄프 로렌’은 특유의 ‘폴로’ 로고로 구매력 높은 미국 명문 사립 고교생들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이었다. 보다 저렴하게 옷을 낸 ‘렌즈 엔드’도 고급 브랜드로 여겨지진 않았지만 짭짤한 이익을 거두고 있었다. 시나이더는 둘 사이 틈새시장을 노렸다. 그의 전략은 랄프 로렌의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렌즈 엔드 가격으로 선보이는 것이었다.

흥행을 위해선 브랜드의 정통성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는 첫 카탈로그에 이렇게 홍보했다. “제이크루는 럭비, 라크로스와 조정 경기 의류에서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모두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즐길 만한 스포츠였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 문구는 미국인들의 가슴 속 무언가를 건드렸다. 제이크루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셸 오바마가 어느 토크쇼에서 한 말은 패션업계의 전설로 남았다. 사회자는 그녀의 옷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은 옷을 다 합치면 6만~7만달러(약 8000만~9000만원) 정도 됩니까?”라고 물었다. 미래의 영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이건 제이크루 앙상블입니다.”

영원한 영광은 없는 것일까. ‘프레피 룩의 왕국’을 세운 제이크루는 2020년에 파산 신청을 했다. 업계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한다. 파산의 원인은 평범했다.

트렌드 변화, 품질 관리 문제, 무리한 사업 확장 등. 회사는 회생해서 다시 운영하고 있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10년마다 죽었다 살아나는 프레피 룩은 어떨까? 늘 그랬듯, 잘나가고 있다.

정리=안시욱 기자

이 글은 WSJ에 실린 빌 히비의 서평(2023년 4월 3일) ‘The Kingdom of Prep Review: Putting on Appearances’를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