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같은 사태가 한국에서 벌어질 경우 예금 인출 속도에 대해 “미국보다 100배는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 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한 이 총재는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혼란이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줬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한국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뱅킹이 훨씬 더 보급된 상태”라며 “이런 디지털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현지 특파원 간담회에서도 “최근 은행 사태로 많은 중앙은행이 디지털 경제에서 규제나 예금보호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SVB 사태에서 가장 놀란 것이 (은행에서 돈이 빠지는) 스피드(속도)라고 했다”고 말했다.

옐런 만난 추경호 "IRA·반도체법 韓 우려 남아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OK저축은행과 웰컴저축은행에서 1조원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손실이 발생했다는 허위 사실이 퍼진 걸 언급하며 “소셜미디어로 페이크(가짜) 뉴스가 퍼지면 사람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은행에서 돈을 뺄 수 있다”고도 했다. 또 “인공지능(AI)으로 모니터링해 가짜라는 점을 빨리 알릴 필요가 있다”며 “가짜뉴스는 일벌백계해 금융시장 교란 요인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연말 전에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란 시장의 기대에 대해선 “그게 아니라고 (지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경고를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반기에 물가가 3%까지 갈지 불확실한데 금리를 낮추려면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증거가 있어야 하니 아직은 낮출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캐나다 호주 등 중앙은행 총재도 금리를 언제 낮추느냐는 이야기가 많아 ‘그게 아니다’라고 하고 있다고 한다”며 “(금리 인하를 고려하는 게 아니라) 인상을 언제까지 지속할지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현재 금리 수준에 대해선 “긴축적 수준에 있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자동으로 내릴 만큼 충분히 긴축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매우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고, 금통위의 입장도 매우 강한(긴축적인) 것 같은데, 언제쯤 이런 기조가 바뀔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는 “데이터에 달렸다”고 답했다.

이 총재와 함께 미국을 방문 중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같은 날 워싱턴DC에서 재닛 옐런 재무장관을 만나 미국 반도체지원법(CHIPS Act)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우려를 전달했다. 추 부총리는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법과 IRA 세부 규정 마련 등의 조치로 한국을 배려한 것에 감사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관련 규정상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우리 업계의 우려가 잔존한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강진규 기자/워싱턴=정인설 특파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