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전세'라는 이름의 금융상품
전세시장이 불안하다.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가라앉은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로 인해 역전세와 깡통전세도 우려스럽다.

전세는 자가, 월세와 함께 주거의 수단이지만 자가나 월세와 달리 금융상품이기도 하다.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2년간 돈을 빌려주고 만기가 되면 돌려받는다. 이자를 금전 대신 주거 서비스로 받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세는 2년 만기 채권과 다를 바 없다.

금융상품의 중심에는 정보 비대칭이 있다. 기업이 차입한 자금을 제때 상환할지 투자자는 잘 모른다. 그러니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금융기관의 존재 이유가 있다. 금융기관은 기업을 검사해 상환 능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하며, 이 정보가 채권가격에 반영되도록 한다. 금융감독당국은 금융기관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감독한다.

전세의 중심에도 정보 비대칭이 있다. 역전세와 깡통전세가 발생할 때 집주인에게 자금 여력이 없다면 세입자는 제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심지어 무자본으로 ‘갭투자’한 임대인들은 사기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문제는 세입자가 집주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금융시장과 달리 이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는 기관도 감독당국도 보이질 않는다. 그 결과 집주인 리스크에 대한 평가 없이 이 리스크가 가격에 전혀 반영되지도 않은 채 전세가 거래되고 있다.

올 들어 전세사기 사건이 불거지자 정부는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선순위 보증금과 체납에 관한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정부가 전세시장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점에서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웠다고 볼 수 있다.

전세시장에서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할 기관은 공인중개사다. 금융시장에서 금융기관이 하는 역할을 전세시장에서는 공인중개사가 맡아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 고려하고 있는 전세사기 방지에 대한 책임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인중개사가 집주인의 상환 능력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하는 역할과 의무가 강화돼야 한다. 이를 통해 전세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집주인 리스크가 전세가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공인중개사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정부가 관리 감독해야 한다. 전세사기에 가담하는 공인중개사를 철저히 걸러내고 엄벌해야 한다.

정보 수집과 평가에는 ‘규모의 경제’가 존재한다. 집주인들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고정비용과 전문성이 요구되지만, 한 번 시스템이 구축되면 집주인 한 명을 추가로 평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공인중개사 대부분이 소상공인 수준이기 때문에 과연 이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지, 집주인에 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집주인의 신용을 제대로 평가할 만한 전문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공인중개업의 기업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동안 전세시장의 위험에 대비해 정부가 한 일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을 도입한 것 정도다. 전세시장의 정보 비대칭 문제 해결 없는 보증보험 제도는 미봉책에 불과하며 보증보험의 수익성 악화와 이에 따른 보험료 인상을 초래할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급한 보증 보험금은 9241억원에 달했고 이 중 임대인으로부터 회수한 금액은 2490억원에 불과했다. 또 이 제도는 전세사기에 악용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보증보험 가입 대상의 전세가율을 100%에서 90%로 낮춰 5월부터 시행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상당수 빌라 세입자가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공인중개사의 역할을 강화하고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공인중개시장에서 전문 기업이 성장하고 경쟁이 촉진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세입자가 공인중개사를 신뢰할 수 있고, 위험도에 따라 전세가가 형성돼 세입자가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