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남·미녀 뻔한 로맨스? 만나자마자 막 내리네 [연극 리뷰]
로맨스 장르라고 하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주로 다룬다. 통상 그렇다는 것이고 연극 ‘추남, 미녀’(사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남녀 주인공이 만나자마자 막을 내려버린다.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최근 개막한 연극 ‘추남, 미녀’는 프랑스 베스트셀러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동명 소설을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2019년 국내에서 세계 초연한 이후 두 번째 공연이다.

내용은 제목에서 짐작되는 그대로다. 천재 조류학자인 ‘추남’ 데오다와 머리 나쁜 ‘미녀’ 트레미에르의 이야기다. 외모와 지성 가운데 하나씩만 갖춘 남녀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하는 설정은 낯설지 않다. 작품을 흥미롭게 하는 지점은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성숙이다. 연극은 콤플렉스를 털어내고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작품은 모두 8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다. 에피소드에 따라 데오다와 트레미에르의 탄생부터 유년기, 학창 시절, 첫사랑 등의 순간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 세상은 두 사람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어른으로 성장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기르면서다.

원작 소설과 가장 큰 차이점은 결말이다. 소설과 달리 연극은 데오다와 트레미에르가 처음으로 만나면서 끝난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상태에서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상대방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 그대로를 인정하는 사랑 말이다.

연극은 2인극으로 펼쳐진다. 두 명의 남녀 배우가 주변 인물까지 합쳐 총 20개의 역할을 연기한다. 배우들이 순식간에 다른 캐릭터로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 요소 가운데 하나다. 러닝타임 100분을 두 명의 배우가 온전히 채워 나간다. 배우의 역량이 강조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캐스팅에 따라 작품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이번 공연에선 데오다 역을 배우 백석광·김상보, 트레미에르 역을 김소이·이지혜가 소화한다.

연극은 데오다의 서사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아쉬움을 약간 남겼다. 트레미에르는 할머니에게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통해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뎌내고 첫사랑의 아픔을 이겨내는 힘을 기른다. 하지만 데오다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설명이 부족하다. 공연은 다음달 2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