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2016년 시작한 '악산악수(樂山樂水)' 프로젝트를 위해 첼리스트 이호찬과 설악산 봉정암에 올라 찍은 것이다.
3kg짜리 첼로를 업고 설악산 정상에 오른 첼리스트
한자만 보면 '요산요수'라고 읽어야지 왜 악산악수인가 싶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전시하는 중에 이런 취지로 혼(?)을 내고 가신 분들이 더러 있었다.

한자 ‘樂’은 ‘즐겁다’는 뜻일 때는 ‘락’으로 발음하고 ‘음악’을 뜻할 때는 ‘악’으로, 또 ‘좋아하다/즐기다’란 뜻일 때는 ‘요’로 읽게 되어 있다. 이걸 몰라서 굳이 악산악수라고 표기한 게 아니다.

조선 시대 산수화에는 풍경만 있는 게 아니다. 대개 집 한 채, 아니면 하다못해 사람 한 명이라도 보이기 마련이다.

경치는 경치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그 안에 담긴 뜻을 성찰해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치 있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풍경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풍경을 완성하는 존재다. 그래서 나 역시 이 작업을 통해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음악인들의 열망을 표현하려 했다.

그리고 이런 뜻을 선명하게 전달하려고 프로젝트 이름를 사자성어 ‘요산요수’에서 읽는 방식만 바꿔서 ‘악산악수’라고 지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은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대청봉 산마루 가까이 해발고도 1244m 지점에 있어 찾는 길이 만만치 않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연주자와 나는 설악산 인근에서 하루 숙박하고 새벽 일찍 산행길에 올랐다.

11월 새벽녁 산속 추위보다 간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인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악산악수 프로젝트를 하면서 우리나라 곳곳을 가보는 중이지만, 이날 코스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무게 3㎏ 짜리 첼로를 멘 연주자는 그러나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미안함과 동시에 감동을 느꼈다.

나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그런지 무릎 연골이 많이 닳았다. 빠른 산행이 가능할 리 없다.

그저 정상에 닿을 때까지 무릎이 잘 버텨주기만 기대하며 한 걸음씩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대화는 점점 적어지고 산속이라 햇볕 드는 곳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맘이 더 급해지면서 경치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 약간 걱정되기 시작했다.

패딩에 기모바지를 껴입은 몸은 절인 배추마냥 자꾸만 늘어지고, 연주자도 허리가 아파 보였다. 완만하게 올라가는 수렴동 계곡 코스를 선택했지만, 이 길도 우리에겐 결코 쉽지 않았다.

계곡에서 내가 잘 올라오는지 계속 지켜보는 연주자. 힘들 때 사람 됨됨을 잘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역시 이호찬은 다정하고 배려 깊은 연주자다. 정상에 간신히 도착해 사찰에서 내주는 미역국에 밥을 대충 말아 먹은 뒤, 연주자에겐 잠시 쉬라고 하고는 급히 촬영장소를 둘러보았다.

봉정암으로 들어가 밖의 기암과 산을 한번 쭉 보고 밖으로 나간다.

사진을 찍을 때는 보통 이런 식으로 직접 답사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땐(나는 당시 직장인이었다) 다르게 얻은 정보로 진행할 때가 있다.

이제는 직감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런 순간에는 심장이 더빨리 뛰고 불안해진다.

심산유곡이 굽이굽이 펼쳐진 풍경과 함께 예술가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하고, 카메라와의 적정 거리도 필요하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되는 지점을 찾아야 특별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신이 개입하는 질적인 시간, '카이로스(Kairos)'를 맞이할 때이다.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하고 준비가 되면 연주자를 최적의 위치에 앉힌다.

장비는 35㎜ 칼 차이스(Carl Zeiss) 단렌즈와 캐논 1Ds Mark3 바디. 크게 숨을 한번 쉬고 셔터를 계속 눌렀다.

해가 지기 전, 자연이 내게 허락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잽싸게 움직여야 한다.

직감과 끌림에 맡기는 게 가장 좋은 결정이다.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면 나는 무상무념에 빠진다. 집중과 선택 뿐, 그 순간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을 소재로 하는 사진에서는 우연이 주는 기회와 주의깊은 관심, 빠른 선택이 중요하다. 빛과 자연은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다르다.

지금 그곳에 다시 간다면 같은 사진을 찍지 못할 것이다. 비슷한 사진은 나올지라도 자연이 주는 느낌, 연주자의 상태는 다를 테고 나의 시야도 다르게 포착할지 모르니 말이다.

나는 촬영을 하면서 '지금이야, 다음은 없어'라고 늘 되새긴다.
3kg짜리 첼로를 업고 설악산 정상에 오른 첼리스트
당일치기라 빨리 하산해야 한다. 하지만 동절기에 권고하는 하산 시간은 벌써 지났다.

산속의 풍경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목적을 이룬 정신은 살짝 흥분했으며, 몸은 반대로 살짝 풀려 있다.

초반 하산길은 나름 좋았지만 어둠이 빠르게 깔리기 시작하니 덜컥 겁이 났다. 연주자가 다칠지나 않을까 우려와 걱정이 한움큼 찾아왔다.

우린 손전등 하나 없이 휴대폰 빛만으로 한발 앞을 간신히 비춰가며 빠르게 걸어갔다. '열정'이란 장비 밖에 믿을 곳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 보고는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하늘이 산속에 펼쳐놓은 한편의 무대 아닌가.

멀리서 산과 어우러진 별을 본 적은 있어도 컴컴한 가운데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별이 반짝이는 체험은 해본 적이 없었다.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미치도록 아름답다, 이제까지 본 별은 별이 아니야' 라며 잠시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이어진 하산길은 계속 고요했다. 들리는 소리라곤 우리 자신의 발소리뿐이었다.

몇백 미터쯤 앞에 작은 암자인지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가운데 갑작스레 근방에 멧돼지가 나타났다. 나는 그쪽은 솔직히 무서워 보지도 못했다.

동행자 말로는 새끼도 있는 듯했다고 한다. 앞만 보고 걸으란다. 혹시 덤빌지도 모르니.

다리가 덜덜 떨리지만 지금으로선 경보 선수처럼 빠르게 걷는 수밖에. 주차장에 도착하니 내 차에 누가 접촉사고를 내고 전화번호를 남겨 놓았다.

통화해서 서울에 가서 처리하기로 했다. 찌그러진 차를 탄 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서 우린 서울로 향했다. 별이 총총한 산골짜기를 뒤로 한 채로.

<글, 사진 연주자의 허락하에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