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엘라의 손톱, 더 글로리의 고데기…일상적 물건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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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신지혜의 영화와 영감
Ⅰ. 복도를 돌아설 때마다 이 방에는 무엇이 있을까, 두근거린다.
기대와 설렘의 두근거림이기도 하지만, 놀람과 작은 충격을 방지하기 위한 두근거림이다. 방 안에 다양한 크기의 빨간색 오브제가 있다.
그냥 딱 봐도 손톱이다. 쨍하니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임이 분명하다.
어떻게 알까? 늘 보는 우리의 신체 일부이니 그냥 모양만 봐도 손톱임을 알 수 있다. 아무리 크기가 다르고 ‘그렇게’ 배치되었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만약 이 ‘손톱’을,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우리의 일상 어디에선가 느닷없이 그런 모양새로 마주친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강렬한 빨간 색은 차지하더라도 그 ‘손톱’의 크기에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깜짝 놀라는 것을 넘어 희미한 공포마저 느끼지 않을까. ‘손톱’을 보고 돌아서니 벽면에 영상이 돌고 있다. 어느 여자의 뒷모습이다. 단정하게 손질된 머리카락의 주인이 궁금해지는 순간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높은 톤의 목소리로 깔깔대며 웃는데 얼굴이 없다.
"앗, 깜짝이야!"
그래서 마틴 마르지엘라의 전시는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누군가는 불쾌하고 무서웠다지만.
Ⅱ. 아무도 없어야 하는 시간과 장소인데 누군가 불쑥 나타난다면?
영국의 비평가이자 문화이론가인 마크 피셔는 그의 저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the weird and the eerie>에서 프로이트의 ‘운하임리히’에 대해 설명한다.
운하임리히는 기이한 것, 으스스한 것과 동일시된다. 이것은 ‘내부의 낯선 것, 이상하게 친숙한 것, 낯설게 느껴지는 친숙한 것, 즉, 내부 세계가 그 자체와 일치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 일상적이지 않은 느낌, 뭔가 살짝 어긋나고 비틀려 있다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으스스한 것’에 대한 운을 떼면서 ‘아무 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 있는 무엇과 무언가 있어야 하는 곳에 없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무서운 이야기에서 느끼는 공포, 일상의 어느 순간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바로 이렇게 아무 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 있는 무엇, 그리고 있어야 하는 곳에 그것이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아무도 없어야 하는 시간과 장소인데, 누군가 불쑥 나타난다면 그보다 더한 공포는 없을 것이다.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하고 자꾸 뒤적이면서 중요한 물건을 찾게 된다면 혹시 없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에 휩싸인다. 네 친구가 여행을 떠났다.
외딴 곳에서 해가 저물고 간신히 작은 집 한 채를 발견해 하룻밤 묵어가기로 한다.
하지만 네 친구는 도통 잠을 이룰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재미있게 놀면서 시간을 보내자며 놀이를 시작한다.
우리는 네 명이니까 방의 네 구석에 서서 한 사람씩 자기 앞 구석에 있는 친구를 탁 치면 그 친구가 다음 친구에게 가서 탁 치고…. 깜깜한 밤에 스릴을 즐기며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려가며 놀았다.
그런데 어슴푸레 날이 밝아올 무렵, 네 친구는 엄청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 이 놀이는 절대 네 명으로는 할 수 없는 놀이였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없어야 하는 곳에 있는 무엇’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공포이다.
Ⅲ. 우리가 친근함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친근함’이란 어떤 대상과 함께 보낸 시간과도 관계 있을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일상적인 것이고 예측 가능한 고정적 기대치를 갖는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 일상성과 친근함이 무너질 때 우리는 혼란과 놀라움, 기이함은 물론, 으스스함까지 느끼게 된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이는 국내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재, 좋은 연출과 탄탄한 연기, 미술과 음악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어디 하나 꿀리는 것 없는 작품들이기에 신작 소개를 받을 때마다 얼른 보고 싶어진다.
최근 흥미롭게 본 드라마가 바로 ‘더 글로리’인데, 이 작품에서 섬뜩함과 충격, 공포를 느끼게 하는 오브제는 바로 고데기이다.
어느 집에나 하나씩은 다 있는, 어느 누구나 자주 혹은 매일 사용하는 오브제, 고데기. 일상적인 시공간에서 고데기는 그저 유용한 도구일 뿐이다. 누군가를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유용한 도구. 그러나 ‘더 글로리’에서 영악하고 사악한 연진이와 친구들은 친근하고 보편적인 일상용품인 고데기를 일상적이지 않게 비틀어 사용함으로써 고통과 공포, 혐오를 불러온다.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 있는 무엇’이, ‘올바른 용도가 아닌 비일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용도로 사용된 것’이 주는 으스스함이다.
이런 식의 공포는 로알드 달이나 스티븐 킹의 단편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단편소설들의 오브제보다 ‘더 글로리’의 고데기 라는 오브제가 훨씬 큰 공포와 끔찍함을 가져오는 건 그것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친근한 오브제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신지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