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고작 300만원' 돈 봉투
63년 전 오늘 4·19 혁명을 일으킨 도화선은 3·15 부정선거였다. 관권을 동원한 사전투표, 대리투표, 공개투표 등의 부정은 물론 개표 부정도 극심했다. 엄청난 부정선거는 학생과 시민의 거센 저항과 대규모 유혈사태를 불렀고, 결국 자유당 정권이 붕괴했다. 그 뒤로도 선거 부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한다는 등 선심성 공약과 함께 돈 봉투를 돌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막걸리·고무신 선거라는 말도 나왔다.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선거공영제 정착, 금품·향응·재산상 이익이나 대가성 자리 제공 등을 엄벌하는 공직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등으로 인해 부정선거가 발붙일 틈이 별로 없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관청·학교·언론 등의 선물이나 촌지도 대부분 사라졌다. 금권선거를 용납하지 않을 만큼 국민 인식도 높아졌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은 그래서 충격적이다. 당대표 후보로 나선 송영길 전 대표 측 인사들이 돈을 조달하고 봉투에 넣어 전달한 정황이 통화 녹취에서 생생히 드러났다. 10여 명의 현역 국회의원에게는 300만원씩, 투표권이 있는 대의원 등에게는 50만원씩 총 9400만원이 전달됐다는 게 검찰 수사 내용이다. 전당대회 결과 송 후보는 당대표가 됐고, 돈 봉투 드라마 주인공인 윤관석 의원은 당 사무총장, 이정근 씨는 사무부총장에 발탁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민주당의 도덕 불감증이다. 그제 이재명 대표가 공식 사과하기 전까지 민주당은 검찰의 의혹 수사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 “국면전환용 기획수사”라고 비난했다. 송 전 대표는 “측근들의 개인 일탈”이라고 치부했다. 사석에서는 “수천, 수억도 아니고 고작 300만원을 갖고 그러느냐”는 의원들도 있다고 한다.

어제는 친이재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의원이 한 라디오에 출연해 “부끄럽고 죄송하다”면서도 “전체적으로 큰 금액이라고 생각하지만 실무자들의 차비, 기름값, 식대 정도 수준”이라고 말해 공분을 자아냈다. 그 정도면 괜찮다는 건가. ‘고작 300만원’이 아니라 ‘무려 50만원’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