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청 공무원노조가 전국공무원노조의 해직자 생계비 지급 의혹을 제기하며 제작한 피켓. 원공노 제공
원주시청 공무원노조가 전국공무원노조의 해직자 생계비 지급 의혹을 제기하며 제작한 피켓. 원공노 제공
민주노총 소속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로부터 수억원대 생계비를 받은 해직 노조 간부가 해당 기간 영리활동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공노는 정부의 요구에도 노조 회계 자료 제출을 끝내 거부했다.

노동계에서는 “해직자 생계비를 둘러싼 회계 불투명성 때문에 전공노가 회계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노조서 생계비 받으며 영농법인 감사 재직

문성호 강원 원주시청 공무원노조(원공노) 사무국장은 19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전공노가 노조 회계 공개를 거부하는 건 ‘해직자 생계비 리스크’ 때문”이라며 “전공노는 당장 전수조사를 실시해 조합원들이 낸 피 같은 노조비가 어디에 쓰였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공노는 오는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공노의 해직자 생계비 지급과 관련한 의혹을 폭로하고 전수조사를 촉구할 예정이다. 회견에는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소속 박정하 의원 등 여당 의원들도 참석한다.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이 4월 5일 강원 원주시청 공무원노조를 방문해 집행부와 함께한 모습. 왼쪽부터 신현정 원공노 조직부장, 우해승 위원장, 박 의원, 문성호 사무국장. 원공노 제공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이 4월 5일 강원 원주시청 공무원노조를 방문해 집행부와 함께한 모습. 왼쪽부터 신현정 원공노 조직부장, 우해승 위원장, 박 의원, 문성호 사무국장. 원공노 제공
문 국장에 따르면 전공노 원주시지부 해직자 A씨는 2004년 공무원노조 총파업으로 해직된 후 2021년 퇴임 전까지 17년간 지부장 등 노조 해직 간부로 활동했다. 전공노는 A씨처럼 해직된 노조 간부 130여명에 공무원 급여에 준하는 생계비를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 A씨는 노조 활동을 하며 원주의 한 영농조합법인에서 감사로 재직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설립된 이 영농법인은 블루베리와 유사한 아로니아라는 과일을 재배해 농협 하나로마트 등을 통해 판매한다.

A씨와 비슷한 시기에 노조 활동을 한 B씨는 “A가 아로니아 농사를 직접 짓고 영농조합 사업도 부업 삼아 도와주는 걸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원공노는 A씨가 영농법인 감사로 재직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6년여간 최대 4억원에 달하는 생계비를 노조에서 수령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공노의 해직자 생계비 지급 관련 규약 제6조는 ‘수익사업을 하거나, 생업에 종사(취업 등)하는 자’에 대해 생계비 지급을 제한하거나 중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직자라도 겸직이 법적으로 금지된 공무원에 준해 생계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마련된 조항이다.
전국공무원노조의 해직자(희생자) 생계비 지급 관련 규정
전국공무원노조의 해직자(희생자) 생계비 지급 관련 규정
문 국장은 “전공노 원주시지부 회계 자료 등을 확인한 결과 A씨의 생계비 지급과 관련해 규약 위반 사실이 확인됐다”며 “공무원의 겸직이 법적으로 금지되고 위반할 경우 징계 등 처벌을 받는 점을 고려하면 그에 준해 생계비를 지급받은 A씨 사례는 명백한 규약 위반이자 위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한 제5조는 ‘희생자(해직자)는 성실하게 조합 활동에 복무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A씨는 원공노 확인 결과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지부에 비치된 활동상황부를 전혀 작성하지 않았다.

문 국장은 “제대로 근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성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회계자료 제출 거부 전공노, 괴물됐나"

경찰도 전공노 해직자의 생계비 부당수령 의혹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최근 원공노를 방문해 관련 서류를 일체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노동조합(전공노)에서 정리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다.

원공노는 2021년 8월 조합원 투표와 총회를 거쳐 민주노총 소속 전공노에서 탈퇴한 뒤 과거 지부사무실 서류를 정리하던 과정에서 해직자 생계비와 관련한 부당 수급 사실을 확인했다.

앞서 원공노는 지난달 7일 조합비가 민주노총 간부의 인건비로 빼돌려진 일명 ‘노조판 기생충’ 사건을 폭로하기도 했다. 지난달 3월 13일에는 국회에서 국민의힘과 정부가 연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민당정 협의회'에 참석해 증언했다.

문 국장은 “전공노는 이 일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내로남불의 깊은 늪에 빠져 있다”며 “전수조사를 통해 스스로 괴물이 된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3월 13일 국회에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민당정 협의회'를 개최한 모습. 왼쪽부터 성일종 당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김병언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가 3월 13일 국회에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민당정 협의회'를 개최한 모습. 왼쪽부터 성일종 당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김병언 기자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공노는 회계 자료 제출을 끝까지 거부한 52개 노조 중 한 곳이다. 해당 노조들은 회계 서류 등 노조 관련 자료를 사무실에 비치·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증빙하는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됐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노동개혁의 가장 중요한 분야가 노사법치 확립인 만큼, 회계자료 제출 거부에 대해서는 법적조치를 철저히 강구하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