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잊힌다더니 다큐까지 등장
“대통령 업무에 전력을 다하고 끝나면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공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퇴임 후 행적을 보면 ‘말 따로 행동 따로’다. 퇴임 3일 뒤부터 시작한 SNS를 통해 근황을 알리는 데 열심이다. 찾아오는 야당 정치인들을 잇달아 만났고, 관련 사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공개됐다. “이재명 대안 없어” “당 달라져야” 등 ‘전언 정치’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아전인수식 해석 전쟁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실형을 선고받은 며칠 뒤 그의 책을 추천하며 “저자의 역량을 새삼 확인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고 했다. 정작 공정과 정의를 훼손한 건 조 전 장관인데, “한국 사회의 법과 정의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는 촌평까지 남겨 공분을 샀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련, “정말 위험하다”고 비난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수사에 대해선 “부디 도를 넘지 않길 바란다” “분별없는 처사” 등 격한 용어로 각을 세웠다. “경제는 어렵고, 민생은 고단하고, 안보는 불안하다”고 쓴 연하장을 돌리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이 후임에게 이렇게 대놓고 ‘직공’한 예는 찾기 어렵다.

이번엔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에 등장했다. 대통령의 공과는 후대의 평가에 맡겨놓으면 될 일이다. 역사에 남을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니고, 퇴임 1년도 안돼 다큐를 만들었다니 꽤나 당혹스럽다. 사리 분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렇게 등장할까 싶다. 이 영화에서 한 발언도 어이가 없다.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허망하다”고 했다. 재임 기간 집값 폭등으로 수많은 영끌족을 만들었고,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주도성장으로 나랏빚은 다락같이 올랐으며, 탈원전으로 관련 산업은 몰락 위기로 몰렸다.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며 정상회담 이벤트까지 하더니 핵 개발만 도와준 꼴이 되는 등 5년 실정을 꼽자면 한도 끝도 없다. 사죄해도 모자랄 판 아닌가. 그는 “잊히고 싶다고 했는데, 나를 현실 정치에 소환하지 말라”고 했다. 잊히지 않기 위해 안달하는 것처럼 들린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